카를로스 카스타네다 3

조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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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틀란으로 가는 길>


서문


돈 후앙은 ‘보기seeing’ 위해서는 우선 ‘세계를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우 ‘세계를 멈춘다’는 표현은 지극히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각 해석의 흐름 -보통은 끊기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이, 그 흐름과는 이질적인 일련의 상황에 의해 정지됨으로써 일상 현실을 변성시킨 모종의 자각의식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 통상적인 지각 해석의 흐름을 정지시킨 이질적인 상황은 주술에 의한 세계 기술이었다. 돈 후앙이 알려준 ‘세계를 멈추기’ 위한 필요조건은 당사자의 확신이었다. 바꿔 말해서, 당사자는 이 새로운 기술의 전모를 완전히 내재화함으로써 옛 기술을 전복시켜야 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지각의 타당성이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현실은 절대로 의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교조적인 확신을 타파해야 한다.


일단 ‘세계를 멈춘’ 후의 다음 단계는 ‘보기’였다. 돈 후앙이 말하는 ‘보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학습을 통해 현실이라고 부르게 된 기술 바깥에 존재하는 세계의 부름에 호응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싶다.


제1부 ‘세계 멈추기’


#1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의 동의


식물이란 매우 특이한 존재라네.

살아 있고, 느끼는 존재이지.


사람은 주위의 모든 것에서 동의를 얻을 수 있다네.


정령spirit

정령 없이는 그 무슨 일도 할 수 없어.


#2 개인사 지우기


내겐 개인사라는 게 전혀 없네. 어느 날 내겐 개인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술을 끊는 것처럼 끊어버렸던 거야.


자넨 내가 누구 또는 무엇인지를 결코 알 수 없을 거야. 왜냐하면 내겐 개인사라는 게 없거든.


아무 개인사도 없는 사람은 아무 설명도 할 필요가 없어. 그런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지 그에게 화를 내거나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없어.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념으로써 자네를 속박하는 사람이 없어진다는 점이야.


모든 개인사는 지워버리는 게 최선이야.

그러면 귀찮게 나를 방해하는 타인의 사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거든.


내 개인사에 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내가 누군지,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은 전무해. 나조차도 예외가 아냐.


나는 이 모든 것인데 어떻게 내가 누군지를 알 수 있겠나?

자네는 조금씩 자네 주위를 안개로 에워싸야 하네.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확실하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주위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거야. 자네의 문제는 자네가 너무 현실적이라는 점이야. 자네의 노력은 너무 현실적이고, 자네가 느끼는 감정도 너무 현실에 밀착해 있어. 어떤 일이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돼. 자넨 스스로를 지우기 시작해야 하네.


무슨 목적으로요?


자넨 약초에 관해 배우고 싶어하지. 하지만 그것들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자넨 우선 자네의 개인사부터 지워야 하네.


어떻게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하게. 자네가 실제로 뭘 하는지를 남에게 알리지 않는 식으로 말이야. 그런 뒤에는 자네를 잘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와야 하네. 그렇게 하면 자넨 자네 주위를 안개로 감쌀 수 있어.


사람들이 일단 자네를 안 뒤에는 자네라는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바로 그 순간부터 자넨 그들의 사념의 결박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된다는 점이야. 개인적으로 나는 남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궁극적인 자유를 선호한다네. 사람들이 자네라는 사람을 아는 것과는 달리, 그 누구도 나를 확고부동하게 알지는 못해.


하지만 그러면 거짓말을 하는 꼴이지 않습니까.


난 거짓이나 진실 따위에는 관심이 없네. 거짓은 오직 자네가 개인사를 갖고 있을 때만 거짓인 거야.


개인사가 없는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거짓말이 될 수가 없다네.


지금부터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걸 그냥 보여주라고. 단, 자네가 어떻게 그랬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말고 말이야.


알다시피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밖에는 없네. 모든 걸 확실하고 현실적인 걸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안 그러거나 둘 중 하나야. 처음 선택을 따른다면 우린 우리들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지독한 따분함을 느끼기 마련이지. 하지만 두 번째를 선택해서 개인사를 지우면 자기 주위에 안개를 발생시킴으로써 정말로 흥미진진하고 불가해한 상태에 이르게 돼.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본인조차도 도대체 어느 구멍에서 토끼가 뛰쳐나올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라고나 할까.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구든 정신을 바짝 차리기 마련이라네. 단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거지. 마치 모든 걸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삶보다, 도대체 어느 덤불 뒤에 토끼가 숨어 있는지를 모르고 사는 삶 쪽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3 자존심 없애기


자넨 스스로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

마음속에서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걸 바꿔야 해! 스스로를 너무나 높이 평가하는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해 짜증을 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내던지고 떠나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자넨 그걸 자긍심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난센스야! 자넨 나약하고 건방질 뿐이라고!


그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한 일이 없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터무니없이 과대한 중요성을 부여해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만심 또한 개인사처럼 내버려야 하는 것이라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정말이지 불가사의하다네. 쉽게 비밀을 내놓으려 하지 않지.


자네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바로 자네라고 자네가 믿는 한 주위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음미하는 건 불가능해. 지금 자네는 눈가리개를 단 말이나 마찬가지라네. 자네 눈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자네 모습밖에는 비치지 않으니까 말이야.


식물을 향해서는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어. 자네가 만들어낸 단어를 써도 좋아. 중요한 건 그걸 좋아한다는 감정이고, 그걸 동등한 존재로서 다루는 행위라네.


식물을 채집하는 사람은, 그럴 때마다 그 식물을 향해 반드시 뜯어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며, 언젠가는 본인의 몸을 그 음식으로 바칠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돈 후앙은 말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식물하고 우리는 동등한 입장에 있어. 어느 쪽이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지.


이 조그만 식물에게 말을 걸어보게. 더 이상 스스로를 중요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고백하라고.


지금부터 작은 식물들에게 말을 걸게. 모든 자존심이 사라질 때까지 말을 거는 거야.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질 때까지. 자, 저기 저 언덕 쪽으로 가서 혼자서 연습하게.


식물의 대답을 들으려면 커다랗고 명확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야 해.


우리 주위의 세계는 수수께끼라네. 그리고 인간은 그 밖의 것들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냐. 조그만 식물이 친절을 베풀었을 때는 응당 감사하는 게 도리야. 안 그런다면 우릴 안 놓아줄지도 모르고.


양손의 손가락을 느슨하게 구부리자 묘하게도 전혀 힘들이지 않고 돈 후앙의 엄청난 속보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따금 손이 나를 앞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였다.


나는 고양감을 느꼈다. 이 괴팍한 늙은 인디언과 하릴없이 걸어간다는 행위가 즐거웠다. 나는 입을 열고 페요테를 구경시켜달라고 거듭 졸랐다. 돈 후앙은 나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 죽음은 조언자다


자넨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 빨리 인연을 끊어야 하네.


하얀 매.


자네의 죽음이 이른 경고를 보낸 거야.

죽음이 다가올 때는 언제나 오싹하는 한기를 느끼는 법이지.


죽음은 영원한 동반자라네.

죽음은 언제나 우리 왼쪽으로 팔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있네. 자네가 하얀 매를 바라보고 있을 때 죽음도 자네를 바라보고 있었어. 죽음은 자네 귀에 대고 속삭였고, 그때 자넨 방금 자네가 느낀 것과 같은 오싹한 한기를 느꼈어. 죽음은 언제나 자네를 감시하고 있고, 자네 어깨를 툭 칠 때까지 언제나 그렇게 감시하고 있을 거야.


소싯적에 자네는 사냥감을 추적해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어. 죽음이 기다리는 것처럼. 자넨 죽음이 우리 왼쪽에 있다는 걸 알아. 자네가 그 하얀 매의 왼쪽에 있었던 것처럼.


죽음이 그런 식으로 우리를 쫓아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큰 자존심을 붙들고 있단 말인가?


다급할 때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죽음의 조언을 구해야 하네. 그때 죽음이 어떤 몸짓을 해준다면 엄청난 양의 옹졸함을 내다버릴 수 있어. 죽음을 흘끗 보거나, 동반자가 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야.


죽음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현명한 조언자야. 자네가 평소에 그러듯이 모든 게 엉망이 되어서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자네의 죽음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게 사실인지 몰어보게. 그럼 자네의 죽음은 그 생각이 틀렸다고 할 거야. 죽음의 접촉 밖에 있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야. 자네의 죽음은 이렇게 대답할걸세. ‘난 네게 아직 손을 대지 않았어’ 라고 말이야.


죽음에게 충고해줄 것을 간청하고, 마치 자기한테는 절대로 죽음의 손이 닿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인간들 특유의 그 한심한 옹졸함을 내버려야 하네.


비밀을 알아내고 싶지 않은 이상 일부러 식물들에게 말을 걸 필요는 없고, 식물들에게 말을 걸려면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니까 말이야.


#5 책임지기


지금 이 순간, 자네의 죽음에 관해 생각해보게.

그건 팔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있어. 죽음은 언제든 자네를 건드릴 수 있지. 그러니 자넨 한심한 생각이나 기분 따위를 즐길 시간 여유가 없어. 그 누구에게도 그런 여유는 없지.


그는 정말로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말했다. 말을 하는 대신 행동에 나서라는 것이다.


뭔가를 결심한 사람은 끝장을 봐야 하는 법이야. 하지만 그걸 위해 하는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해. 무슨 일을 하든, 우선 자신이 왜 그런 행동에 나서는지부터 알아야 하네. 그런 다음에는 의문이나 후회를 느끼는 일 없이 행동에 나서는 거야.


사냥꾼의 이름이 죽음인 세계에서는 후회나 의문을 느낄 시간이 없다네. 오직 결정을 내릴 시간만 있을 뿐이야.


자기가 내린 결단에 책임을 진다는 건, 그걸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네.


어떤 결단을 내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떤 일이 다른 일보다 더 심각하거나 덜 심각한 법은 없어.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죽음이 사냥꾼인 세계에는 결단의 경중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사람에겐 오직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내리는 결단밖에 없다네.


#6 사냥꾼이 되기


이로운 장소를 찾는 법.

적절한 장소를 찾으려면 눈을 모들뜨기(사팔뜨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같은 상을 보더라도 좌우의 눈이 완전히 따로따로 그것을 볼 수 있도록 천천히 훈련하면, 시각정보의 변환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세계를 이중으로 지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돈 후앙에 의하면 이 이중 지각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육안으로는 지각하기 힘든 주위 환경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우선 가까운 곳에 있는 물체를 거의 곁눈질 하는 것처럼 바라보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다음 돈 후앙은 좌우의 눈에 맺힌 상들을 분리해 보라고 말했다.

빠르게 흘끗흘끗 보면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광경이라기보다는 느낌에 더 가까운 것들이지. 앉아 쉴 만한 덤불이나 나무나 바위 따위를 바라보면, 자네 눈이 거기가 최상의 휴식처인지 아닌지를 느낌으로 알려줄 거야.


눈으로 느끼는 것이 요령일세. 지금 자네 문제는 뭘 느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거야. 하지만 계속 연습해보면 느낌이 올 거야.


일단 눈에 맺히는 상을 분리하고 모든 걸 두 개씩 볼 수 있게 되면, 그 두 개의 상 사이에 있는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네. 뭐든 주목할 만한 변화는 그 부분에서 일어나거든.


사냥꾼이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라네.


세계를 여러 방식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지. 사냥꾼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과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야 해. 안 그런다면 사냥은 무의미한 잡일이 되어버린다네. 이를테면 오늘 우리는 작은 뱀 하나를 잡았지만 목숨을 그렇게 급작스럽고 확실하게 끊어야 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그녀에게 사과해야 했어. 그런 일을 하면서 나는 언젠가는 내 목숨도 그 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급작스럽고 확고하게 끊어질 거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나 뱀이나 마찬가지이고, 오늘은 뱀들 중 하나가 우리 음식이 되어주었을 뿐이네.


사냥에 나서더라도 굳이 그걸 좋아할 필요는 없어.

그냥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을 뿐이야. 최고의 사냥꾼들은 딱히 사냥을 좋아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그들은 단지 사냥을 잘할 뿐이야.


사냥꾼은 남달리 견실한 성격을 지녀야 하네. 진짜 사냥꾼은 뭐든 운에 맡기는 법이 거의 없어. 지금까지 나는 자네에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줄곧 설득해봤지만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네. 자네가 본으로 삼을 구체적인 예가 아직 없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네. 난 자네의 옛 사냥꾼 정신을 되살렸거든. 자넨 그걸 통해 변화할지도 몰라.


돈 후앙은 조금씩 몸의 움직임을 줄여가더니 급기야는 기이한, 거의 섬뜩할 정도의 경직 상태에 도달했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그의 윤곽을 알아보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마침내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깔리자 그는 검은 돌덩어리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의 부동 상태는 너무나도 완전했기 때문에 그라는 인물이 마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마침내 깨달았다. 돈 후앙은 언제까지든 이 황야에서, 이 바위들 사이에서 미동도 않고 머물러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필요하다면 영원히 말이다. 엄밀한 행동과 감정과 결단으로 이루어진 그의 세계는 진정으로 우월했다.


나는 말없이 그의 팔에 손을 갖다 댔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7 접근하기 힘든 존재가 되기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지금 이즈음의 세계는 매우 기이한 곳이라네. 뭘 보든 간에 두려워히지 말게.


세계가 오직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세계는 불가해한 장소라네. 특히 황혼녘에는 말이야.


바로 이즈음, 황혼이 깔리는 시간대에는 바람 따위는 없어. 이 시간대에는 오로지 힘만이 존재할 뿐이야.


자네가 이곳 황야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황혼녘에는 바람이 힘으로 변한다는 걸 알아차렸을걸. 제대로 된 사냥꾼이라면 누구나 그걸 알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네.


어떻게 행동한다는 겁니까?


황혼과 바람에 숨겨진 힘을 이용하는 식으로.


위대한 사냥꾼의 비밀은 바로 거기 있어. 길이 꺾일 때마다 자유자재로 스스로를 내놓거나 숨기는 능력이지.


자네도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내놓거나 내놓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네. 자네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을 가지고는 언제나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내놓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노출을 삼간다는 것은 아예 숨어 버리거나 비밀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접근하기 힘든inaccessible한 존재가 되는 일이라고 했다.


자네가 숨는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안다면 숨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

자네의 문제는 바로 그 사실에서 비롯된 거야. 자네가 숨더라도 다들 숨었다는 걸 알고, 반대로 숨지 않았을 때는 모든 사람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거지.


스스로를 내놓는다 being available

‘스스로를 남의 손이 닿는 곳에 놓는다’

‘스스로를 번잡한 길 한복판에 갖다 놓는다’


자넨 거기서 빠져나와야 해. 번잡한 길 한복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일세. 자네의 전 존재는 지금 그곳에 있기 때문에 숨어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어. 숨어 있다는 건 착각에 불과해. 길 한복판에 있다는 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는 뜻이니까 말이야.


자네가 지향해야 할 목적은 접근하기 힘든 존재가 되는 거야.

자네는 접근하기 쉬운 존재였기 때문에 그녀를 잃었던 거야. 자넨 언제나 그녀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고, 그런 자네의 삶은 판에 박힌 일상의 연속이었어.

특이한 일상이기 때문에 일상적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지만, 결국은 일상에 불과하다는 걸 보장하지.


사냥의 오의는 접근하기 힘든 존재가 되는 거라네. 그 금발 처자의 경우에 그걸 대입하자면, 자넨 사냥꾼이 되어서 그녀를 조금씩만 만났어야 했어. 자네가 한 행동과는 다르지. 자넨 매일 그녀와 함께 지냈고, 그 탓에 마지막에는 따분한 감정밖에는 남지 않았어.


접근하기 힘든 존재가 된다는 것은 주위 세계에 손을 덜 댄다는 뜻이라네. 메추라기를 다섯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만 먹는 것처럼. 단지 화덕을 만들기 위해 식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반드시 그래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바람의 힘에 스스로를 노출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무無로 쪼그라들 때까지 쥐어짜지 않는 것처럼 말이야.


스스로를 내놓지 않는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진을 빼놓는 것을 피한다는 뜻이네. 그건 배를 곯거나 절망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다시는 먹을 일이 없을 거라고 느끼고 눈앞에 있는 음식을, 메추라기 다섯 마리를 몽땅 먹어버리는 그 불쌍한 녀석처럼 말이야!


사냥꾼은 자신의 덫으로 사냥감을 계속 유인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 걱정한다는 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접근하기 쉬운 존재가 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일단 걱정하기 시작하면 필사적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하기 마련이지. 일단 그렇게 무엇인가에 매달리면 자네가 녹초가 되든지, 사람이든 그 밖의 무엇이든 자네가 매달린 대상 쪽이 녹초가 되든지, 둘 중 하나일세.


접근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이 숨거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이미 설명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뜻도 아냐. 사냥꾼은 자신의 세계를 상냥하게, 조금씩만 이용한다네. 그 세계를 이루는 것이 사물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들이든 힘이든 간에 말이야. 사냥꾼은 자신의 세계를 친밀하게 다루지만, 바로 그 세계의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힘든 존재이기도 하네.


사냥꾼이 접근하기 힘든 존재인 것은 자기 세계를 쥐어짜서 엉망으로 만들어놓지 않기 때문이라네. 그러는 대신 살짝 접촉해서 필요한 만큼만 거기 머물다가, 흔적조차 거의 남기지 않고 재빨리 떠나는 거지.


#8 일상의 습관을 뒤흔들기


좋은 사냥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란 사냥감의 습관을 파악하는 거라는 사실은 자네도 금세 알아차렸을 거야. 바로 그런 지식이 좋은 사냥꾼을 만드는 거지.


내가 자네에게 사냥을 어떻게 가르쳤는지를 떠올리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몰라. 우선 나는 어떻게 덫을 만들어서 어떻게 놓는지를 가르쳤고, 그다음에는 자네가 노리는 사냥감의 습관을 가르쳤고, 마지막에는 직접 덫을 놓아서 사냥감들의 습관을 확인해 보였네. 그것들은 모두 사냥의 외부 형태에 해당해.


자, 이제는 사냥의 종착점인 동시에 가장 힘든 부분을 자네에게 전수해줘야겠군. 자네가 실제로 그걸 이해하고 사냥꾼을 자처할 수 있을 때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도 몰라.


사냥꾼이 된다는 건 단지 사냥감을 덫으로 잡는 것뿐만이 아냐. 유능한 사냥꾼이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건 덫을 놓거나 사냥감의 습관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사냥꾼 본인이 아무런 습관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네. 그게 바로 그의 강점이야. 사냥꾼은 그가 잡으려는 동물들처럼 무거운 습관과 예상 가능한 변덕에 푹 빠져 있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유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사냥꾼이 되기 위해선 자넨 일상의 습관을 뒤흔들어야 하네. 사냥은 잘했잖나. 자넨 사냥하는 법을 빨리 터득했고, 이젠 자네가 사냥감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예측하기 쉬운 존재인지를 알아.


내가 보기에 자네는 마치 사냥감처럼 행동하고 있어. 과거에 내게도 똑같은 지적을 한 사람이 있으니까 자네만 유별난 것도 아냐. 우리 모두가 우리가 쫓는 사냥감처럼 행동한다네. 그런 고로, 우리 자신도 무엇 또는 누군가의 사냥감이란 얘기지. 따라서 이 모든 사실을 아는 사냥꾼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사냥감이 되기를 멈추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얘기야. 무슨 뜻인지 알겠나?


하지만 사냥꾼조차도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한 몇 가지 짐승들이 있네. 이를테면 일생에서 딱 한 번 마주칠까 말까 하는 어떤 사슴이 있지. 그것도 아주 운이 좋을 때나 가능한 얘기야. 그런 짐승들을 그토록 찾기 힘든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드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그런 짐승들에겐 습관이 없어. 그래서 마법의 짐승인 거야.


사슴이 매일 밤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잠을 잔다면 습관이라고 할 수 있네. 하지만 마법의 존재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아. 사실, 언젠가는 자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을 거야. 아마 그런 존재 중 하나를 추적하면서 여생을 보내는 게 자네의 운명일지도 모르겠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자넨 사냥을 좋아해. 언젠가 자네는 이 세계의 어떤 장소에서 마법적인 존재와 마주치고, 그걸 따라가려고 할지도 몰라.


마법적인 존재를 본다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경험이라네.


#9 지상에서의 마지막 전투


덫을 만들어서 놓는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삶에서 최대한 많은 걸 끌어내려면 사냥꾼은 사냥꾼처럼 살아가야 하네. 유감스럽게도 그런 변화는 쉽지 않은데다가 아주 느리게만 일어나서, 단지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는 데만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네. 나도 진정한 사냥꾼이 되는 데 몇 년이나 걸렸지만, 원래부터 사냥에 소질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몰라. 내 경우 가장 힘들었던 건 정말로 변하고 싶다는 확신을 얻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네.


사냥꾼은 사냥감의 습관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인간과 짐승과 그 밖의 모든 생물을 관장하는 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하네.


우리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힘들을 얘기하는 거야.


자넨 언제나 자기 행동을 설명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지. 마치 이 지상에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이야. 그건 자존심이라는 자네의 그 오래된 감정에서 오는 거야. 자넨 그게 너무 많아. 개인사도 너무 많이 갖고 있고, 그런 반면 자기 행동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지. 죽음을 조언자로 이용하지도 않고 말이야. 가장 큰 문제는, 자네는 너무 접근하기가 쉽다는 점이야. 바꿔 말해서, 자네의 삶은 나와 만나기 전과 못지않게 뒤죽박죽이라네.


누구든 자신이 기이한 세계에 산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해. 그리고 우린 기이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네.


우린 지금 같은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게 아냐. 자네가 세계를 기이하다고 생각하는 건 그것에 대해 따분함을 느끼거나, 그것과 조화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러나 내가 세계를 기이하다고 느끼는 건 그것이 광막하고, 엄청나고, 불가해하고, 심원하기 때문이라네. 나는 자네가 그런 곳에 대해 - 이 경이로운 세계, 이 경이로운 사막, 이 경이로운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라고 설득하고 싶었네. 그리고 스스로의 모든 행동을 제어하는 법을 터득하도록 설득하고 싶었어. 왜냐하면 자네는 이런 곳에 잠깐밖에는 머물 수 없기 때문이야. 사실, 그건 이 세계의 모든 경이로움을 보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지.


자넨 이 심원한 세계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한 번도 책임을 진 적이 없어!


자넨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어. 자네에겐 아주 단순하지만 큰 문제가 있어. - 시간이 충분하다고 느낀다는 문제가.


자네의 삶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생각 안 하는 게 사실이라면, 자넨 뭘 기다리고 있는 건가? 왜 변화하기를 주저하지?


지금 자네가 뭘 하고 있든 간에 그게 이 지상에서 자네가 하는 마지막 행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모르나. 그건 자네의 마지막 전투가 될 가능성조차 있어. 자네가 앞으로 1분이라도 더 살 수 있다고 보장해줄 수 있는 힘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단 말일세.


자네에겐 시간 여유가 없어. 전혀.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야.


그냥 동의하는 걸로 끝내지 말게. 그렇게 쉽게 동의하는 대신에 행동에 나서란 말이야. 도전을 받아들여. 변화하는 거야.


내가 말하는 변화는 결코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갑자기 일어나네. 그리고 지금 자네는 완전한 변화를 가져올 그 급작스런 순간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자넨 전혀 변하지 않았어. 그래서 자기 자신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야. 하지만 언젠가 불시에 갑작스런 변화를 자각하고 깜짝 놀랄 가능성이 없지만도 않아. 나는 변화가 그런 것임을 잘 알기 때문에 자네를 설득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걸세.


우리의 삶이 어물어물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 따위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보라고 권하겠네. 방금 변화는 느닷없이 불시에 찾아올 거라고 말했는데, 죽음도 마찬가지야.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아나?


아주 신중하게 자기 행위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사람들이 거기 해당되지. 그들이 느끼는 행복은 스스로에게 전혀 시간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완전히 자각하면서 행동하는 데서 오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은 특이한 힘을 발휘한다네. 그들의 행동은 뭐랄까...


행동은 힘을 가지고 있어. 특히 그런 행동이 자신의 마지막 전투임을 아는 사람이 하는 행동일 경우에는 말이야. 무엇이든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완전히 자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기묘한 다행감(多幸感)에 사로잡힌다네. 그러니 자네도 자네의 삶을 되돌아보고 거기에 맞춰 행동할 것을 권하겠네.


친구, 자네에겐 시간이 없어. 이건 인간이라는 존재가 직면한 불행이지. 그 누구도 시간이 충분한 사람은 없고, 자네의 그 연속성은 이 경이롭고 불가능한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네.


자네의 그 연속성은 단지 자네를 소심하게 만들 뿐이야. 그런 자네의 행동은 지상에서 마지막 싸움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사내가 행한 행동의 화려함과 힘과 강제력에는 아예 비할 바가 못 되네. 바꿔 말해서, 자네의 그 연속성은 자네를 행복하게 하거나 강하게 해주질 못해.


회한이나 슬픔이나 근심을 느끼는 일 없이, 자네와 죽음 사이를 잇는 고리에 주의를 집중하게. 자네에게 시간 여유가 없다는 사실에 집중해서, 자네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거기 맞추는 거야. 자네의 모든 행동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싸움이 되도록 해. 오직 이런 상황하에서만 자네의 행동은 올바른 힘을 가질 수 있다네. 그러지 않는다면, 목숨이 이어지는 한 자네의 행동은 소심한 사내의 행동밖에는 되지 못해.


자네가 불멸의 존재라면 전혀 문제가 안 되지. 하지만 죽어야 할 존재라면 소심함 따위가 끼어들 여유는 없어. 소심함은 사람을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에 매달리게 만들거든. 소심함은 모든 것이 안온하다는 식으로 자네를 안심시켜주지만, 경이롭고 불가해한 세계가 자네 앞에서 그 입을 벌릴 때면 - 이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지만 - 자넨 자네의 그 확실한 방식이 실은 전혀 확실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야. 소심함은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운명을 살피고 탐구하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한다네.


우리의 죽음은 바로 저기서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전투가 될 수도 있다네.


내가 그걸 전투라고 부르는 건 그게 투쟁이기 때문이야.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무런 갈등도, 생각도 하지 않고 어떤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겨가지. 사냥꾼은 그와는 반대로 모든 행동을 평가하네. 또 그는 자신의 죽음에 관해 친숙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하려는 모든 행동을 마치 마지막 전투인 것처럼 신중하게 행하지. 보통 사람들에 비해 사냥꾼이 얼마나 우월한 위치에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건 멍청이밖에 없네. 사냥꾼은 그의 마지막 전투에 대해 그에 합당한 경의를 표하는 법이지. 그러니까 지상에서의 그의 마지막 행동이 그가 보인 최선의 행동이 되는 건 당연해. 그러는 쪽이 더 즐겁기도 하고, 그러면 그가 느낄 첨예한 두려움도 많이 무뎌지거든.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만도 몇 년이나 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까지도 몇 년이나 걸려. 자네에게 그럴 만한 시간이 남아 있기를 바랄 따름이네.


얘기하지 않았나. 우리는 기이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인간을 이끄는 힘들은 예측 불가능하고 무시무시해. 하지만 그 모습만은 정말로 장려하다네.


우리를 이끄는 뭔가가 정말로 존재합니까?


물론일세. 우리를 이끄는 힘들이 있어.


그것들을 묘사해주시겠습니까?


그것들은 영, 정령, 공기, 바람, 뭐 그런 표현들을 써서 부른다는 것을 빼고는 딱히 말해줄 것이 없군.


그는 인간이나 동물을 이끄는 힘들이 이 특정한 토끼를 내게 이끌었다고 말했다. 나를 내 죽음으로 이끄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이다. 토끼의 죽음은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나 자신의 죽음이 무엇 또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이 되는 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그런 힘들의 수중에서 우리는 티끌만도 못한 존재야.

그러니까 그놈의 자존심은 버리고 이 선물을 적절하게 이용하라고.


자네가 놓은 덫은 이 토끼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전투였어. 내 말을 믿게. 이 토끼가 이 경이로운 사막을 마음껏 돌아다닐 시간은 이미 끝나 있었어.


#10 힘이 접근하도록 하기


이제 힘에 접근할 수 있는 시점이 됐으니 이제부터 자넨 ‘꿈꾸기dreaming’에 도전해야 하네.


지금까지 ‘꿈꾸기’에 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건, 어떻게 하면 사냥꾼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네. 사냥꾼은 힘의 조작에는 관심이 없으므로, 그가 꾸는 꿈은 그냥 꿈일 뿐이야. 때로는 지극히 인상적인 꿈을 꿀지도 모르지만 그건 ‘꿈꾸기’는 아니라네.


반면에 전사는 힘을 찾기를 원하고, 그런 힘으로 가는 길 중의 하나가 바로 ‘꿈꾸기’인 거야. 사냥꾼과 전사의 차이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야. 전사는 힘을 얻기 위해 움직이지만, 사냥꾼은 힘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거나 아예 모른다고 말이야.


누군가가 전사가 될 수 있는지, 또 사냥꾼밖에는 될 수 없는지를 정하는 건 우리가 아냐. 그런 결정은 인간을 이끄는 힘들의 영역에서 내려진다네. 그래서 자네가 메스칼리토와 놀았다는 사실을 그토록 중요한 징조로 간주하는 거야. 자네를 내게 이끈 것도 바로 그런 힘들이었고 말이야. 누가 자네를 그 버스 정류장으로 이끌었는지 기억나나? 자네를 내게 데려온 건 어떤 어릿광대 같은 작자였어. 그 어릿광대가 자네를 지목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징조였다네. 그래서 난 자네에게 사냥꾼이 되는 방법을 가르쳤지. 그러자 또 하나의 완벽한 징조가 나타났어. 메스칼리토가 자네와 놀았다는 사실 말이야. 이제 내 말을 이해하겠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힘에 접근하게. 자네의 꿈에 도전하는 거야. 자네가 그것들을 꿈이라고 하는 건 자네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네. 하지만 힘을 추구하는 사람인 전사는 그것을 꿈이라고 하지 않아. 현실이라고 하지.


자신의 꿈을 진짜 현실로 간주한단 말입니까?


전사에겐 모든 것이 현실이고, 예외는 없네. 자네가 꿈이라고 부르는 건 전사에게는 현실이야. 자넨 전사가 어리석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하네. 전사란 힘을 사냥하는 흠결 없는 사냥꾼일세. 전사는 절대로 무엇에 취하거나 미치지 않고, 허세를 부리거나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그릇된 판단을 할 여유가 없어. 그런 것들을 허용하기에는 너무 큰 공을 들였거든. 오랫동안 엄격한 자기 규제를 통해 완벽하게 다듬어 놓은 삶이라는 형태로 말이야. 멍청한 오판을 하거나, 무엇을 다른 뭔가로 착각함으로써 그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는 거지.


‘꿈꾸기’가 전사에게 현실인 것은 그런 꿈을 통해 계획적으로 행동하고, 선택하거나 거부하고, 그를 힘으로 이끌어줄 다양한 사물들을 선별해냄으로써 그것들을 조작하고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야. 보통 꿈속에서는 전사도 계획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돈 후앙, 그럼 ‘꿈꾸기’가 현실이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물론 현실이야.


우리가 지금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 못지않게 현실적이다?


굳이 비교를 해야겠다면 ‘꿈꾸기’ 쪽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르겠군. ‘꿈꾸기’를 하는 자네에겐 힘이 있고 상황을 바꿀 수 있거든. 수없이 많은 비밀을 캐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뭐든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도 있어.


‘꿈꾸기’도 실제로 일어나. 사냥하고, 걷고, 웃는 일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지금부터 우리는 힘의 장소로 갈 거야. 거기서 자네는 힘에 접근하는 방법을 배워야 해.


힘이란 전사가 다루는 거야. 처음에는 믿기 힘들고 억지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네. 힘에 관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힘드니까 말일세. 지금 자네가 겪고 있는 건 바로 그거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힘은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네. 자네는 힘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고, 힘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예전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무엇인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는 거야. 그런 다음 힘은 절로 발생한, 통제할 수 없는 무엇인가의 형태로 자네 앞에 나타나네. 그게 어떤 식으로 오고 또 실제로는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줄 수는 없어. 힘은 극히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자네 눈앞에 온갖 경이로운 광경들을 출현시킬 수 있지. 힘이 자네 안의 것이 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힘은 자네의 행동을 관장하면서도 자네의 명령을 따르는 무엇인가가 되네.


나는 지금 여기서 힘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를 자네에게 가르쳐 줄 작정이네.

어떻게 하면 ‘꿈꾸기를 정립’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지.


‘꿈꾸기를 정립’한다는 것은 꿈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간결하고 실제적인 통제력을 발휘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것을 사막에서 언덕에 오른다거나, 협곡의 그늘에 머물러 있는 식으로 자기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더 주어진 것에 비유했다.


우선 간단한 일로 시작해야 해. 오늘 밤 꿈속에서 자네는 자네의 손을 바라보아야 하네.


이 경이롭고 불가해한 세계에서 ‘꿈꾸기’는 ‘보기’나 죽음이나 기타 어떤 일과도 마찬가지로 진지한 행위이니까 말이야.

뭔가 재미난 일로 간주해도 좋아. 자네가 그걸 통해 이룰 수 있는 온갖 일들을 상상해보라고. 힘을 사냥하려는 자의 ‘꿈꾸기’에는 거의 한계가 없다네.


꿈속에서 보는 사물들은 자네가 바라볼 때마다 변화하기 마련이네. 따라서 단지 그것들을 바라보는 대신 계속 시야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꿈꾸기를 정립’할 때의 요령이야. 그런 식으로 모든 것에 초점을 맞추는 데 성공한다면 ‘꿈꾸기’는 현실이 되네. 그러고 나면 잘 때 하는 일이든 안 잘 때 하는 일이든 차이가 없어져. 무슨 뜻인지 알겠나?


문명세계는 그냥 거기 있게 내버려둬. 신경 쓰지 말라고! 자네더러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권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미 얘기했듯이 전사는 자기가 사냥하는 힘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완벽해야 해. 그런 것도 구별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전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런 반면, 진짜 세계가 뭔지 안다고 호언장담하는 자네가 뭐가 현실이고 뭐가 현실이 아닌지를 구별하는 능력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결국은 어설픈 행동에 나섰다가 얼마 가지도 못해 죽어버릴 걸세.


굳이 손을 바라봐야만 하는 건 아니네. 아까 말했듯이 뭐든 좋으니 하나를 골라. 잠들기 전에 미리 한 가지를 정한 다음에 그걸 꿈속에서 찾아보는 거야. 내가 자네에게 손을 보라고 한 건, 손은 언제나 거기 있기 때문이라네.


자네 손이 모양을 바꾸기 시작하면 시선을 돌려서 뭔가 다른 걸 바라봐야 하네. 그런 다음 다시 자네 손을 보는 거야. 이 기법을 완전히 터득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네.


#11 전사의 마음가짐


저 바위들로 이루어진 원을 바라보게. 저걸 기억에 각인해두면 언젠가 까마귀가 자네를 그런 장소로 또 안내해줄 거야. 원이 완벽하면 완벽할수록 그 힘도 강하다네.


전사의 뼈에는 힘이 깃들어 있지. 그러나 그것은 결코 무덤에 매장되지 않아. 식자의 뼈에는 그보다 한층 더 많은 힘이 깃들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걸 찾아내는 건 불가능해.


돈 후앙, 식자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어떤 전사든 식자가 될 수 있네. 예전에도 말했듯이 전사는 힘을 사냥하는 완전무결한 사냥꾼일세. 그 사냥에서 성공한다면 식자가 될 수 있지.


완벽한 전사 정신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할 가치가 있는 행위라네.


자네가 아무리 신세한탄 하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젠 그걸 바꿔야 해. 그런 태도는 전사의 삶과는 어울리지 않거든.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전사의 마음가짐을 갖는 일이라네. 슬퍼하고 불평하면서 그런 행동이 합당하다고 느끼고, 자기 상황을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려보았자 아무 쓸모도 없어. 누가 누구에게 무슨 일을 한 탓이 아니란 말일세. 특히 전사 입장에서는 말이야.


자네가 여기에 와 있는 건 자네가 여기 오고 싶어했기 때문이야. 진즉에 그 사실에 모든 책임을 졌어야 했어. 그랬더라면 자네가 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생각 자체가 떠오르지 않았을 걸세.


전사가 자기를 땅에 묻는 건 힘을 찾기 위해서지, 자기연민에 빠져 흐느껴 울기 위해서가 아니야.


자기연민은 힘과는 어울리지 않아. 전사의 마음가짐을 가지려면 자제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버릴 필요가 있네.


자넨 아직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어. 여전히 약한 상태라서 지금은 전사의 마음가짐에 관해 얘기해봤자 소용이 없겠군.


그는 꿈의 세부나 선명함은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집착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대답했다.


자네가 ‘꿈꾸기를 설정’ 하기 시작하자마자 보통 꿈들도 매우 선명해지기 마련이야. 선명함이나 뚜렷함은 엄청난 장애들로 작용하는데, 자넨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상태가 안 좋군. 모든 걸 글로 받아 적으려는 건 최악의 강박증이거든.


내 꿈을 샅샅이 기록한다는 행위는 내가 자는 동안 경험하는 비전의 성질에 대해 어느 정도 명확성을 부과해주었다.


그만둬.

그건 아무 도움도 안돼. 그런 일을 해봤자 ‘꿈꾸기’의 목적인 통제와 힘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짓밖에는 안 된다는 뜻이야.


자네가 연습해야 하는 모든 기술들을 다시 복습해보기로 하지. 우선 손에 초점을 맞추는 걸 시발점으로 삼아야 해. 그런 다음 다른 사물들로 시선을 돌려서 흘끗흘끗 바라보는 거야. 그런 식으로 가급적 많은 사물에 초점을 맞추게. 어떤 사물이든 흘끗 보기만 하면 변하지 않는다는 걸 기억해. 그런 다음, 다시 손으로 시선을 돌리는 거야.


자네는 손을 바라볼 때마다 ‘꿈꾸기’를 위한 힘을 재충전하고 있는 거라네. 그러니까 처음에는 너무 많은 사물을 쳐다보려고 하지마. 한 번에 네 개로 족해. 나중에는 그 범위를 넓혀서 보고 싶은 걸 모두 봐도 되지만, 그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통제력을 잃는다는 느낌이 오거든 다시 자네 손으로 시선을 돌리게.


그런 식으로 언제까지나 사물들을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새로운 기술을 배울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네. 지금 그 기술을 가르쳐주지. 하지만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까지는 쓰면 안 되네.


‘꿈꾸기 설정’의 다음 단계는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는 일일세. 자네가 자기 손을 바라보는 법을 터득한 것처럼, 의지력으로 스스로를 움직여서 이런저런 장소로 가는 거야. 우선 어디로 가고 싶은지를 확실히 정하게.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장소 - 이를테면 학교라든지 공원, 친구 집 따위가 좋겠지. 그런 다음 거기로 가자고 스스로에게 명하는 거야.


이 기술은 터득하기가 무척 어려워. 두 가지 일을 수행할 필요가 있지. 우선 어떤 특정한 장소로 가자고 스스로에게 명해야 해. 그 기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에는 여행 시간을 정확하게 제어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네.


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돈 후앙?


지치지도 않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군. 난 자네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냐. 자넨 힘에 접근해서, 그걸 사냥하려는 거야. 난 단지 자네를 안내할 뿐이고.


그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전사의 마음가짐을 가질 필요가 있네. 안 그러면 그는 일그러지고 추해질 뿐이야. 이런 마음가짐이 없는 삶에 힘 따위는 없네. 자네를 예로 들어보지. 자넨 뭘 봐도 짜증을 내고 동요해. 자넨 모든 사람이 자네를 조종하려고 한다고 느끼고, 거기 대해 징징거리고 불평하는 게 일이지 않나. 자넨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같은 존재야. 자네의 삶에는 힘이 없어. 그렇게 살아간다는 건 정말이지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냐고!


반면에 전사는 사냥꾼이라네. 모든 걸 계산해. 그게 바로 자제력이야. 하지만 일단 그런 계산이 끝나면 전사는 행동에 나설 뿐이라네. 그는 자기를 놓아주지. 모든 걸 내려놓는 거야. 전사는 바람에 날리는 잎사귀가 아냐. 그런 그를 압박하거나, 그를 상하게 하거나 그의 판단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전사는 살아남는 일에 특화된 존재이므로, 최상의 방법을 써서 살아남는다네.


전사는 다칠 수는 있어도 결코 짜증을 내지는 않는다네. 전사가 적절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한, 다른 인간들의 그 어떤 행동도 그를 짜증 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


지난밤에 자넨 그 퓨마에게 짜증을 내지 않았네. 그게 우리를 쫓아와도 화를 내지 않았어. 난 자네가 그놈에게 욕설을 내뱉거나, 우리를 쫓아올 권리 따위는 없다고 항의하는 걸 듣지 못했어. 실은 그 퓨마가 잔인하고 악의적인 퓨마였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말이야. 하지만 자네가 그걸 피하려고 악전고투하고 있을 때 자넨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어. 유일하게 중요한 건 살아남는 일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자넨 그 일을 훌륭하게 수행했어.


만약 그때 자네가 혼자였고, 그런 상태에서 퓨마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고 해도 자넨 퓨마의 행동에 대해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거야.


전사의 마음가짐은 자네의 세계에서든 그 밖의 어떤 세계에서든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네. 모든 허튼 짓거리를 일소하기 위해서 자네에겐 바로 그게 필요해.


전사의 마음가짐을 갖추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라 혁명이야. 퓨마와 물쥐와 인간들을 동등한 존재로 볼 수 있는 마음가짐에 도달한다는 건 오직 전사에게만 가능한 엄청난 위업이라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해.


#12 힘의 전투


자네는 힘을 사냥해야 해.


힘을 사냥할 경우 계획 따위는 없어. 사냥감을 사냥할 때와 똑같지. 사냥꾼은 뭐든 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걸 잡으니까 말이야. 따라서 언제든지 즉각 행동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네.


바람에 관해서는 알 테니 이제는 자네 힘으로 바람 속에 깃든 힘을 사냥할 수가 있어. 하지만 자네가 모르는 다른 것들도 있네. 바람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 시각에 힘의 중심이 되는 것들이지.


힘이라는 건 실로 특이한 것이라네. 그게 뭔지를 정확히 꼬집어 말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어떤 것들에 대해 갖게 되는 일종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힘은 개인적이야. 오직 당사자에게만 속한 것이니까 말이야. 이를테면 내 은사는 단지 흘끗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수 있었다네. 난 그의 시선을 받은 여자들이 시들시들해지는 걸 봤어. 그가 아무 때나 다른 사람들을 병들게 했다는 건 아냐. 단지 그의 개인적인 힘이 개입한 상황에서만 그걸 발휘했으니까 말이야.


누구를 병들게 할지는 어떻게 정했습니까?


그건 나도 몰라. 본인도 몰랐을걸. 힘은 언제나 그런 식이라네. 당사자를 관장하면서도 그의 명령에 따르는 거지.


힘을 좇는 사냥꾼은 그걸 덫으로 잡아서 개인적으로 비축해놓는다네. 전사의 힘이 점점 커지다가 엄청난 수준에 이르면 식자가 될 수도 있어.


힘은 어떻게 하면 비축할 수 있습니까?


그 또한 일종의 느낌이라서, 전사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에 달렸어. 내 은사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내였다네. 그는 그런 느낌을 통해 힘을 비축했어. 그가 하는 모든 일은 강렬하고 직접적이었네. 언제나 장애물을 박살 내면서 매진하던 인상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네. 내 은사에게 일어난 일들도 모두 그런 식으로 일어났어.


이건 힘의 음식일세.


이건 어떻게 힘의 음식이 된 겁니까?


힘을 가지고 있던 짐승의 고기거든. 사슴, 유일무이한 사슴의 고기야. 나의 개인적 힘이 그걸 내게로 이끌었다네. 여기 있는 고기만으로도 우리는 몇 주, 필요하다면 몇 달까지도 생존할 수 있어. 조금씩 베어 물고 철저하게 씹어 먹어야 하네. 힘이 천천히 자네 몸속으로 침투하도록 말이야.


바람을 잘 관찰하게. 자칫 휘말려서 발을 헛디디면 안 돼. 자네를 피곤하게 만들도록 내버려둬서도 안 되고. 바람이 못 보도록 내 등 뒤에 몸을 숨기고 계속 힘의 음식을 씹게. 바람은 나를 해치지 않아. 서로를 잘 알거든.


난 마음대로 젊어질 수 있어. 역시 개인적 힘이 관련되어 있지. 힘을 비축한다면 인간의 육체는 믿기 힘든 위업을 시전하는 것도 가능하다네. 반면에 힘을 허비하면서 살면 금세 뚱뚱한 늙은이가 되어버리지.


잘 때 머리띠를 두르게. 머리띠를 손에 넣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야. 본인이 직접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내 것을 줄 수는 없어. 하지만 그걸 만들려면 일단 ‘꿈꾸기’를 하면서 머리띠로 삼을 만한 물건을 보아야만 해. 무슨 뜻인지 알겠나? 그 머리띠는 자네가 꿈속에서 본 특정한 물건에 입각해서 만들어져야 한단 얘기야. 그건 정수리를 꽉 조이는 천일 수도 있고, 머리에 꼭 맞는 챙 없는 모자일 수도 있어. 힘이 깃든 물건을 정수리에 쓰면 ‘꿈꾸기’가 쉬워진다네. 자네 모자나 수도사의 두건 같은 걸 쓰고 잘 수도 있지만, 그런 물건은 ‘꿈꾸기’를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강렬한 꿈을 보여줄 뿐이라네.


머리띠로 삼을 만한 물건은 단지 ‘꿈꾸기’에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상태에서 전혀 아귀가 맞지 않고 관련도 없어 보이는 사건, 이를테면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이나 구름의 움직임 따위를 목격했을 때도 불현듯 뇌리에 떠오를 수 있다고 했다.


힘의 사냥꾼은 모든 것을 보고 있다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비밀을 알려주지.


하지만 모든 것들이 비밀을 알려준다는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걸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내린 지시를 따르는 거야. 자네가 나를 처음 만나러 왔던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줄곧 자네에게 내린 지시들 말일세. 힘을 가지려면 힘과 함께 살아야 하는 법이야.


지금 우리 눈앞의 세계에는 다른 세계들이 겹쳐져 있네. 그리고 그 세계들은 결코 웃어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냐.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서 대기하고 있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하는 중에 전사의 힘이 약해지면 죽음이 그를 낚아채는 것일 뿐이야. 그러니 아무 힘도 없으면서 미지를 탐험하려 드는 건 어리석은 짓일세. 그런 사람을 기다리는 건 죽음밖에는 없어.


이 세계는 수수께끼야. 이것, 자네가 지금 보고 있는 것들이 전부가 아냐. 세계에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어. 사실은 끝없이 많은 것이라고 해야겠지. 따라서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세계를 억지로라도 익숙한 걸로 만들려는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네. 자네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세계에 자네와 내가 이렇게 함께 있는 건 단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그 세계를 알기 때문이야. 하지만 자넨 힘의 세계를 몰라. 따라서 그걸 익숙한 장면으로 만들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돈 후앙, 왜 제게 그런 힘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지금은 딱히 그래야 할 이유가 떠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충분한 힘을 비축한다면 그 힘이 자네에게 훌륭한 이유를 찾아줄거야.


돈 후앙, 당신은 왜 힘을 원했습니까?


나도 자네하고 다르지 않았어. 힘 따위는 원하지 않았거든. 그걸 가져야 할 이유도 찾을 수 없었고 말이야. 나도 자네가 지금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모든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받은 지시를 단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런 나의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난 충분한 힘을 비축했고, 어느 날 나의 개인적 힘으로 세계를 붕괴시켰다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세계를 멈추고’ 싶어한단 말입니까?


아무도 그러고 싶어하진 않네. 그냥 그런 일이 일어날 뿐이야. 일단 자네가 ‘세계를 멈추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으면 그 이유가 뭔지도 알게 될 걸세. 어떤 특별한 이유로 세계를 붕괴시킨 다음 다시 삶을 이어가기 위해 그걸 복구하는 건 전사에게 요구되는 재능 중 하나라네.


감사를 올리지 않고서는 이 황량한 산을 떠날 수 없어.

전사는 자기가 받은 호의에 상응하는 감사를 표시하기 전에는 결코 힘에 등을 돌리지 않는 법이라네.


#13 전사의 마지막 저항


돈 후앙은 낮 시간대에 낮잠을 자면서 ‘꿈꾸기’를 시도해보고, 그와 동일한 시간대의 특정 장소를 심상화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권했다. 바꿔 말해서 내가 밤에 어떤 장소를 ‘꿈꾼’다면, 그 장소의 풍경 또한 밤에 보는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돈 후앙은 ‘꿈꾸기’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실제로 그 ‘꿈꾸기’를 시행하는 시간대와 일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는 ‘꿈꾸기’의 꿈이 아니라 그냥 보통 꿈이라는 것이다.


좀더 잘하려면 자네가 가고 싶은 장소에 속한 특정 물체를 골라서 거기에 정신을 집중하게. 이를테면 자넨 지금 이 언덕배기에 있는 특정 관목을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될 때까지 관찰하고 있어야 해. 그런 뒤에는 ‘꿈꾸기’를 하면서 그 관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네. 아니면 우리가 지금 앉아 있는 바위를 떠올려도 괜찮고, 그 밖의 다른 물체라도 상관없어. ‘꿈꾸기’를 할 때 이 언덕배기처럼 힘이 깃든 장소를 떠올리면 훨씬 더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다네. 아마 자네가 다니는 학교가 자네에겐 힘이 깃든 장소일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그걸 써. 거기 있는 물체를 골라서 정신을 집중하고, ‘꿈꾸기’를 하면서 그걸 찾아내는 거야.


그런 식으로 특정 물체를 떠올린 뒤에는 다시 두 손을 바라봐야 하고, 그런 다음 다시 다른 물체로 옮겨가는 식으로 ‘꿈꾸기’를 계속하게.


하지만 지금은 이 언덕배기에 있는 모든 것들에 주의를 집중해야 해. 왜냐하면 여긴 자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네.


여긴 자네가 마지막으로 저항하게 될 장소야. 어디로 가든 결국 자네는 여기서 죽게 될 거야. 모든 전사는 자기만의 죽을 장소를 갖고 있다네. 그가 선호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득 찬 장소, 강력한 힘이 개재된 사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 그가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한 장소, 비밀이 밝혀진 장소, 그의 개인적 힘을 비축해 놓은 장소를 말이야.


힘과 접촉해서 그걸 비축하기 위해서 전사는 언제나 그 장소로 돌아올 의무가 있다네. 그러기 위해서는 두 발로 직접 걷든지, 아니면 ‘꿈꾸기’를 통해서 그래야 해.


마침내 이 지상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왼쪽 어깨를 죽음이 툭 치는 것을 느끼는 날, 전사의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는 정신은 그가 선택한 그 장소로 날아가네.


#14 힘의 걸음걸이


개인적인 힘이란 느낌이야. 자기가 운이 좋다고 느낄 때의 그런 느낌 말이야. 기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개인적인 힘은 당사자의 출신과는 상관없이 얻게 되는 거라네. 전사란 힘을 좇는 사냥꾼이고, 내가 자네에게 그걸 사냥해서 축적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는 얘긴 이미 했지. 자네의 문제는 -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 확신하지 못한다는 거야. 자넨 개인적인 힘이 이용가능하고, 축적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지만, 아직도 그걸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


확신한다는 건 자기 힘으로도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이네. 그럴 수 있으려면 자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해. 앞으로도 할 일은 많이 남아 있네. 자넨 첫발을 떼어놓은 것에 불과해.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자각하고, 그 사실이 크나큰 변화를 가져올 때만 자넨 비로소 확신했다고 선언할 수 있는 거야. 그런 다음에는 자네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되네. 스스로 식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있어.


식자란 배움의 힘든 길을 성실하게 따라간 사람을 뜻하네. 서두르거나 흔들리는 일 없이, 개인적 힘의 수수께끼를 최대한 풀어낸 사람이지.


힘을 사냥한다는 건 기이한 일이라네. 처음엔 그럴 생각을 품고, 그다음에는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준비를 갖추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일어나는 그런 일이지.


힘을 사냥한다는 건 정말로 기이한 일이라네. 계획을 미리 짤 방도는 전혀 없어. 그래서 흥미로운 거지만. 하지만 전사는 스스로의 개인적인 힘을 믿기 때문에 마치 계획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네. 자기가 개인적인 힘에 의해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하리라는 걸 확신하는 거지.


돈 후앙, 당신은 전혀 늙지 않았군요!

물론 안 늙었어. 자네에게 줄곧 그걸 보여주려고 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겁니까?

아무 일도 안 했어. 그냥 몸 상태가 좋을 뿐이야.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잘 다루고, 그런 고로 피로나 불편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네. 자신의 몸에게 뭘 했느냐가 아니라 뭘 하지 않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나 할까.



돈 후앙은 손으로 내 입을 막으며, 전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마치 자신이 뭘 하는지를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속삭였다. 그러고는 단단히 기억하라는 듯이 같은 말을 서너 번 되풀이했다. “스스로의 개인적 힘이 작든 거대하든 간에, 그걸 믿고 행동하는 전사는 언제나 완전무결하다네.”


난 강한 육체의 비밀은 자네가 뭘 하느냐가 아니라 뭘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 적이 있네.

그리고 자네가 늘 하는 일을 이제는 하지 않을 때가 왔네. 우리가 출발할 때까지 여기 앉아서 ‘안 하기not-do’를 하게.


힘의 열쇠는 내가 ‘할 줄 아는 일을 하지 않는 것’


나무를 바라보아야 할 경우 내가 할 줄 아는 일이란 즉시 그 나뭇잎들에 주목하는 일이다. 나는 잎사귀의 그림자나 잎사귀들 사이의 빈 공간에는 결코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돈 후앙이 내린 마지막 지시는 나뭇가지 하나를 골라 거기 달린 잎사귀들의 그림자에 정신을 집중하고, 시선이 잎사귀로 향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조금씩 나무 전체를 시야에 넣으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개인적 힘을 비축하기 위한 첫 번째의 의도적인 단계는 자기 몸이 ‘안 하게끔’ 내버려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15 안 하기


내가 한 어떤 일에 대해서도 회한의 감정을 품지 말라고 그가 충고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행동을 못됐다거나 추하다거나 사악하다는 식으로 고립시킨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중요성을 부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긴장을 풀어야 하지만 잠이 들면 안 되고 가능한 한 자각상태를 유지하라고 말했다. ‘줄 침대’는 오직 전사가 평온함과 행복감well-being으로 이뤄진 어떤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얘기도 했다.


돈 후앙은 극적인 어조로, 그가 말하는 행복감이란 각자가 의도적으로 함양해야 하는 어떤 상태이며, 그런 상태를 찾기 위해서는 우선 그것에 친숙해져야 한다고 했다.


자넨 행복감이 뭔지 몰라. 한 번도 그런 걸 경험해본 적이 없거든.


행복감이란 각자가 의도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


모든 건 무엇을 강조하는지에 달렸어. 우리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네. 그리고 거기 들어가는 노력의 양은 똑같아.


저기 보이는 바위가 바위인 건 ‘하기doing’ 때문이라네.


저 바위를 바위로 만들고 저 관목을 관목으로 만든 건 ‘하기’ 때문이야. 자네를 자네로 만들고 나를 나로 만드는 건 바로 ‘하기’ 때문이라네.


말로 표현할 때의 문제는 바로 그거야. 말은 당면한 문제를 언제나 헛갈리게 만들거든. ‘하기’에 관해서 말하기 시작하면, 결국은 언제나 엉뚱한 것에 대해 얘기하게 되기 마련이야. 그러니까 그냥 행동하는 편이 훨씬 낫다네.


저 바위를 예로 들어보지. 저걸 바라보는look 행위는 ‘하기’이지만 그걸 보는see건 ‘안 하기’에 해당한다네.


자넨 단지 ‘하기’ 때문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일 뿐이야. 자넨 바로 그런 식으로 나나 이 세계를 대하고 있어.


저 바위가 바위인건 자네가 저 바위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야. 난 그걸 ‘하기’라고 부르네. 하지만 식자는 바위가 바위인건 단지 ‘하기’의 결과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저 바위가 바위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단지 ‘안 하기’만 하면 돼.


이 세계가 세계인 건 그걸 세계로 만드는 ‘하기’가 뭔지를 자네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네. 자네가 세계의 ‘하기’를 모른다면, 세계는 다른 것이 될 거야.


이게 조약돌인 건 이걸 조약돌로 만드는 데 관련된 ‘하기’를 자네가 알고 있기 때문이야.


자네가 이걸 조약돌로 만들고 있는 건 여기 관련된 ‘하기’가 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세계를 멈추기’ 위해서는 우선 그런 ‘하기’부터 멈춰야 하네.


이 조그만 돌의 경우, ‘하기’가 이것에 대해 처음 하는 일은 이걸 이 크기로 줄이는 일이야. 따라서 ‘세계를 멈추려는’ 전사가 해야할 것은 ‘안 하기’를 통해 이 돌이나 그 밖의 모든 것을 크게 만드는 일이라네.


돈 후앙은 일어서서 큰 바위위에 조약돌을 얹은 다음 가까이 와서 자세히 보고, 조약돌에 난 구멍이나 움푹한 부분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의 극히 세밀한 특징을 찾아보라고 했다. 세부까지 관찰한다면 구멍이나 움푹 파인 부분들은 사라지고 ‘안 하기’가 뭘 뜻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하기’는 자네가 이 조약돌을 이 큰 바위와 구별할 수 있게 해주지. 자네가 ‘안 하기’를 터득하고 싶다면, 나는 자네가 이것들을 합쳐야 한다고 말하겠네.


그는 조약돌을 바위 위에 늘어뜨린 조그만 그림자를 가리키며 이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이 두 물체를 하나로 묶는 아교라고 말했다.


전사는 그림자를 보고 온갖 일들을 알아낼 수 있지.


그는 조약돌을 가지고 가서 어딘가에 묻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


자네가 그걸 너무 오랫동안 보고 있어서 그건 이제 자네의 일부를 갖고 있어. 전사는 언제나 ‘하기’를 ‘안 하기’로 변화시킴으로써 ‘하기’에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네. 그 조약돌을 흔한 돌맹이로 간주하고 아무 데나 내버려둔다면 그건 ‘하기’에 해당해. 하지만 그걸 흔한 돌맹이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는 걸로 간주하는 건 ‘안 하기’에 해당하지. 지금 같은 경우 그 조약돌은 오랫동안 자네에게 푹 잠겨 있음으로써 자네가 되었어. 따라서 아무 데나 내버려두는 대신 땅에 묻어야 해. 만약 자네에게 개인적 힘이 있었다면, ‘안 하기’는 그 조약돌을 힘이 깃든 물체로 바꾸는 행위가 되었겠지만 말이야.


전사의 길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세계가 느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거야. 그는 ‘안 하기’를 통해 세계를 느낄 수 있고, 그 줄들을 통해 세계를 느낄 수도 있다네.


‘안 하기’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지극히 힘든 일이라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터득해야 하거든. 알다시피 식자의 마지막 위업은 ‘보기’야. 그리고 그런 ‘보기’는 그가 ‘안 하기’의 기법을 통해 ‘세계를 멈춘’ 뒤에야 가능해진다네.


너무 게을러서 운동을 안 한 탓에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고 내가 변명했다. 그러자 개인적 힘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그런 식의 육체적 운동이나 훈련은 불필요하며, 그런 사람은 단지 ‘안 하기’를 행하는 것만으로도 완전무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림자란 기묘한 물건이지.


저 바위의 그림자를 보게. 그림자는 저 바위인 동시에 바위가 아냐. 저 바위가 뭘 하는지를 알기 위해 관찰하는 건 ‘하기’이지만,그 그림자를 관찰하는 건 ‘안 하기’일세.


그림자들은 문이나 마찬가지야. ‘안 하기’의 문이지. 예를 들어 식자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관찰함으로써 그들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있는 감정들을 알아낼 수 있다네.


그는 내가 서 있을 곳을 지정해준 다음 이 두 바위들이 떨어뜨리는 그림자를 보고 있으라고 지시했고, 휴식할 장소를 찾기 위해 지면을 훑어볼 때와 마찬가지로 두 눈을 모들떠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휴식할 장소를 찾을 때는 눈의 초점을 맞추지 말고 주위를 바라보아야 하지만 그림자를 관찰할 때는 눈을 모들뜨면서도 뚜렷하게 초점을 맞춰야 하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눈을 모들뜨는 것은 한 그림자의 상 위에 다른 그림자의 상을 중첩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관찰자는 그림자들이 발산하는 모종의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꿈꾸기’는 꿈을 ‘안 하는’ 행위이니까, 자네가 ‘안 하기’를 터득하기 시작하면 ‘꿈꾸기’에도 진척이 있을 걸세. 관건은 꿈속에서 손을 보려고 계속 노력하는 거야. 설령 그 일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걸 자네가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예전에도 말했듯이 전사는 믿을 필요가 없어. 믿지 않고 계속 행동하는 한 전사는 ‘안 하기’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지.


‘꿈꾸기’에 대해서는 자네에게 더 해줄 말이 없네. 나는 오직 ‘안 하기’에 관해서밖에는 얘기해줄 수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자네가 직접 ‘안 하기’에 도전한다면, ‘꿈꾸기’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절로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우선 자네의 두 손을 찾아내는 것이 필수적이네. 난 자네가 그럴 수 있다는 걸 확신해.


이건 누군가를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냐. 이 모든 일은 전사의 투쟁이라는 걸 잊지 말게. 자넨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투쟁해야 해. 자네 힘으로 그러지 못한다면 싸울 가치가 있는 적수를 이용하거나, 이미 자네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은 맹우의 힘을 빌려서라도 말이야.


낮 동안 그림자들은 ‘안 하기’로 가는 문이야. 하지만 밤의 어둠 속에서는 ‘하기’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맹우를 포함한 모든 것이 그림자라네. 이 얘긴 자네에게 힘의 걸음걸이를 가르쳤을 때 이미 다 했어.


지금까지 자네에게 가르친 것들은 모두 ‘안 하기’의 어떤 측면들이었어. 전사는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안 하기’를 적용하지만, 나도 오늘 얘기해준 것 이상으로는 알려줄 수가 없군. 자네 몸이 직접 ‘안 하기’의 힘과 느낌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밖에.


전 언제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래야 하는 건지를 모르겠군요. 전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도 알아. 그건 자네의 ‘하기’야. 그 ‘하기’에 영향을 주기 위해 자네가 다른 ‘하기’를 터득할 것을 권하겠네. 지금부터 여드레 동안 자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야. 자네가 추하고 한심하고 부족하다는 진실을 곱씹는 대신에, 자기는 그 정반대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야. 자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자네는 아예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일세.


하지만 돈 후앙,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면 자넨 이 다른 ‘하기’에 집착하게 될지도 모르거든. 그럼 양쪽의 ‘하기’가 다 거짓이고 비현실적이며, 그런 것을 하나 골라서 매달려 있는 건 시간낭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지. 유일한 현실이란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자네 내부의 존재, 딱 그거 하나뿐이라네. 그 존재에 도달하는 건 자기를 ‘안 하는’ 행위야.


#16 힘의 반지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위장이라네. 이미 말했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기’에 속해 있네. 식자는 모든 사람의 ‘하기’에 스스로를 걸침으로써 기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실제로는 전혀 기이한 일이 아냐. 그걸 기이하게 느끼는 건 오직 ‘하기’에 갇혀 있는 사람들뿐이지. 그 청년들과 자네는 아직 ‘안 하기’를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네들을 속이는 일은 쉬웠지.


우리 모두가 태어날 때는 조그만 힘의 반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우리는 그 조그만 반지를 거의 태어나는 즉시 사용하지. 그래서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무엇인가와 결부되어 있고, 우리가 가진 힘의 반지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반지와 합류하게 돼. 바꿔 말해서, 우리가 가진 힘의 반지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세계의 ‘하기’에 끼워져 있는 거야.


이를테면 자네와 내가 가진 힘의 반지는 지금 이 순간에는 이 방의 ‘하기’에 끼워져 있다네. 이 방을 만들고 있는 건 우리야. 우리가 가진 힘의 반지가 바로 이 순간에도 이 방을 자아내고 있는 거지.


우리가 지금 있는 방은 모든 사람이 가진 힘의 반지에 의해 생성되고, 유지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 모두가 방이란 것의 ‘하기’를 알고 있는 건 어떤 식으로든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방 안에서 보내기 때문이네. 반면에 식자는 다른 힘의 반지를 개발하지. 난 그걸 ‘안 하기’의 반지라고 부른다네. 왜냐하면 그 반지는 ‘안 하기’에 끼워져 있거든. 따라서 식자는 그 반지를 써서 다른 세계를 자아낼 수 있어.


자네가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 건 또 하나의 힘의 반지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고, 자네의 몸도 ‘안 하기’를 모르기 때문이야.


우리는 모두 ‘하기’에 동의하는 법을 배워서 알고 있어. 자넨 그런 동의가 불러오는 힘에 관해서 전혀 몰라. 다행히도 ‘안 하기’ 역시 그에 못지않게 경이롭고 강력하지만 말이야.


아마 메스칼리토와 한 번 더 만난다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


자네의 몸이 자네가 배운 모든 걸 수행하려면 자넨 극단적인 경험을 하는 수밖에 없어.


저건 자네의 세계야. 그는 창밖의 번화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넨 저 세계에 속한 인물이지. 그리고 바로 저기, 저 세계가 자네의 사냥터야. 자기 세계의 ‘하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으니까, 전사는 자기 세계를 자기 사냥터로 만든다네. 사냥꾼으로서의 전사는 자기 세계가 써먹히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아. 그래서 그 모든 면을 남김 없이 써먹는 거지. 그런 면에서 전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가차 없이 빼앗아 쓰는 해적이나 다름없다네. 자신이 잡혀서 부림을 당하더라도 화를 내거나 개의치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야.


#17 싸울 가치가 있는 적수


맞아, 자넨 합리적이야. 바꿔 말해서 자넨 자기가 이 세계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믿고 있지.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많이 알고 있을까? 자넨 사람들의 행위를 본 것에 불과해. 자네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이 자네에게 했거나 그 밖의 사람들에게 한 행위에만 국한되어 있어. 자넨 이 신비롭고 수수께끼에 가득 찬 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제2부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


#18 주술사의 힘의 반지


#19 세계 멈추기


오로지 자기도취만이 있을 뿐이야. 그리고 자넨 모든 걸 설명하려는 행위에 도취하지. 자네에게 설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데도 말이야.


자넨 정말로 영리해.

언제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젠 그런 일은 끝났어. 자넨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거든. 나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자네에게 설명해주지 않을 거야. 헤나로가 어제 자네에게 뭘 했든 간에, 그건 자네 몸을 상대로 한 일이었어. 그러니까 뭐가 뭔지 알고 싶으면 자네 몸에 물어보라고.


돈 후앙의 말투는 상냥했지만 전에 없이. 초연했다. 그 탓에 나는 물밀 듯한 고독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나의 이런 슬픈 감정을 토로했다. 돈 후앙은 미소를 지으면서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우리는 둘 다 죽어야 하는 존재라네.

더 이상 예전처럼 함께 일할 시간은 없어. 이제 자네는 내가 가르쳐준 ‘안 하기’를 총동원해서 ‘세계를 멈춰야’ 하네.


돈 후앙은 또 내 손을 쥐었다. 굳건하고 우호적인 감촉이었다.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딱정벌레와 내가 같은 세계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세계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은 명백했다. 나는 관찰에 몰입하며 돌과 바위 틈새를 넘어 경단을 운반하는 딱정벌레의 엄청난 힘에 경탄했다.


딱정벌레가 깊은 구멍 속에서 나오더니 내 얼굴에서 한 뼘쯤 떨어진 지점에서 멈춰섰다. 잠깐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딱정벌레가 나의 존재를 지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내 죽음의 존재를 지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딱정벌레와 나는 사실 그리 큰 차이가 없었다. 죽음은 저 바위 뒤에서 우리 둘 모두를 그림자처럼 살금살금 쫓아오고 있지 않은가. 한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양감이 솟구쳤다. 딱정벌레와 나는 동등했다. 어느 쪽도 다른 쪽보다 우월하거나 하지 않았다. 죽음이 우리를 평등하게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느낀 고양감과 환희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나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돈 후앙의 말이 옳았다. 그의 말은 언제든지 옳았다. 나는 실로 신비로운 세계에 살고 있었으며, 그곳에 있는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은 실로 신비로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나는 딱정벌레보다 더 중요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나는 눈물을 닦았다.


야생 상태의 코요테를 이토록 가까이서 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이라고는 이 코요테에게 말을 걸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우호적인 개를 상대하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코요테가 내게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코요테가 방금 내게 대꾸했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있었다. 내 머릿속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웠지만, 그런 감정 따위에 대해 숙고할 여유는 없었다. 코요테가 또다시 ‘말했기’ 때문이다. 코요테는 인간이 입으로 하는 식으로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상대가 말하고 있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그러나 애완동물이 주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의 느낌과는 또 달랐다. 코요테는 실제로 뭐라고 말했다. 코요테는 내게 어떤 사념을 전달했고, 그 결과 실제로 말을 하는 것과 가까운 형태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내가 ‘작은 코요테야, 어떻게 지내니?’라고 물으니 코요테는 ‘난 잘 있었는데, 그쪽은 어때?’라고 대답하는 것을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자네 안에서 멈춘 건 이 세계가 어떤 것인지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들일세. 알다시피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로부터 세계란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말을 줄곧 들으며 자란다네. 따라서 우린 그들이 한 말대로 세계를 보는 수밖에 없는 거야.


어제 자네가 본 세계는 주술사들이 말하는 세계가 되었네.

그 세계에서는 코요테들도 말을 하지.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거기서는 사슴, 방울뱀, 나무, 그 밖의 모든 생물들이 말을 한다네. 하지만 난 자네가 ‘보는’ 법을 터득하기를 원해. ‘보는’ 행위는 당사자가 보통 사람들의 세계와 주술사들의 세계 사이를 슬쩍 비집고 들어갈 때만 일어난다는 사실을 자네도 이젠 깨달았을지도 모르겠군. 자넨 지금 이 두 세계의 딱 중간 지점에 와 있어. 어제 자네는 코요테가 자네에게 말을 걸었다고 믿었지. ‘볼’ 줄 모르는 주술사라면 모두 그렇게 믿었을 거야. 하지만 ‘볼’ 줄 아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믿는다는 건 주술사들의 영역에 못 박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걸 알아. 같은 맥락에서, 코요테가 말을 할 리가 없다고 믿는 건 보통 사람들의 영역에 못 박히는 거라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의 세계도, 주술사들의 세계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양쪽 모두 실제로 존재해. 자네에게 반응할 수도 있고. 이를테면 자넨 알고 싶은 걸 뭐든지 그 코요테에게 물어볼 수 있었고, 그런다면 그 코요테는 자네에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을 거야.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코요테는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지만 말이야. 그녀석들은 장난꾼들이거든. 신뢰할 수 있는 반려동물을 얻지 못한 것은 자네의 운이야.


자넨 세계의 줄들을 봤어. 빛을 발하고 있는 존재도 보았고. 이젠 자넨 맹우를 만날 준비가 거의 된 상태야. 물론 자넨 덤불 속에서 본 그 사내가 맹우라는 걸 알고 있어. 자넨 그것이 제트기처럼 포효하는 것도 들었어. 맹우는 들판 가장자리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걸세. 내가 그 들판으로 자네를 데려가주지.


힘이 깃든 식물들은 단지 보조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네.

정말로 중요한 건 ‘볼’ 수 있다는 걸 몸이 깨달을 때야. 그런 뒤에야 비로소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세계는 단지 하나의 기술이자 묘사에 불과하다는 걸 터득할 수 있는 거지. 난 처음부터 줄곧 자네에게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맹우와 맞붙어 씨름할 때까지 시간 여유가 거의 없다는 점이 유감이지만 말이야.


꼭 맹우와 씨름을 해야 합니까?


그걸 피할 방법은 없네. ‘보기’ 위해서는 주술사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터득해야 하니 맹우를 소환하는 수밖에 없어. 일단 소환하면 맹우는 무조건 올 거야.


맹우를 소환하지 않고 제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실 수는 없었습니까?


그럴 수는 없었어. ‘보기’ 위해서는 우선 뭔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법을 터득해야 하고, 내가 아는 다른 방식이라고는 주술사의 방식밖에는 없으니까 말이야.


#20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


난 결코 익스틀란에 도달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감정상으로는... 감정상으로는 앞으로 한 발짝만 더 가면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어. 하지만 결코 그러지는 못하겠지. 길을 가면서도 예전에 알던 익숙한 곳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 무엇도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거든.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여행자들은 모두 허깨비들 뿐이야.


헤나로가 익스틀란으로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덧없는 존재들뿐이라는 뜻이네.

자네를 예로 들어볼까. 자넨 허깨비야. 자네의 감정이나 자네의 열성은 모두 사람의 세계에 속한 것들뿐이지. 그래서 헤나로는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에서는 허깨비 여행자들밖에는 만나지 못한다고 한 거라네.


그제서야 나는 돈 헤나로의 여정이 은유라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그렇다면 당신의 여정은 현실이 아니란 얘기로군요.


그건 현실이야. 현실이 아닌 건 다른 여행자들이지.


그는 턱으로 돈 후앙을 가리키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저 친구는 유일하게 현실이야. 세계가 현실인 건 오직 이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뿐일세.


헤나로가 자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준 건, 어제 자네가 ‘세계를 멈췄기’ 때문이라네. 또 그는 자네가 ‘보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자넨 워낙 멍청해서 자기가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도 모르고 있어. 자넨 정말로 괴상한 친구지만, 늦든 빠르든 ‘볼’ 거라고 지금까지 줄곧 내 입으로 얘기하지 않았나. 하여튼 간에, 다음 기회에 맹우와 만나면 - 물론 이건 다음 기회가 온다면 말이지만 - 자넨 그것과 씨름을 해서 길들여야 해. 그 충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 자넨 강하고 전사처럼 살아왔기 때문에 필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네만 - 자넨 미지의 땅에 와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러면 자넨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고 싶어하게 될 거야. 그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욕구이지. 하지만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길 따위는 없네. 자넨 거기에 남겨두고 온 것들을 영원히 잃어버렸으니까 말이야. 물론 그땐 주술사가 되어 있겠지만, 그조차도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사랑했거나, 증오했거나, 갈구했던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죽거나 바뀌지 않으니까 주술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걸세. 거기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없고, 지상의 그 어떤 힘도, 죽음조차도 그가 사랑하던 장소와 물건과 사람들에게 그를 돌려보내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야. 헤나로는 자네에게 바로 그런 얘기를 해준 거라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모두 남겨두고 와야 해.


하지만 그들도 예전처럼 다시 돌아올 수는 없습니까? 제 힘으로 구출해서 함께 데려온다든지 해서?


없어. 자네의 맹우는 미지의 세계들로 자네를 날려 보낼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저는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버스나 비행기를 타고 말입니다. 로스앤젤레스는 여전히 그것에 존재할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물론이지.

만데카도, 테메클라도, 투손도 모두 그곳에 남아 있을 거야.

테카테도.

페이드라스 네그라스도, 트란키스타스도 있을 거야.


맹우와 빙빙 돌다 보면 세계에 대한 관념이 바뀔 거야.

그게 단지 관념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거지. 그게 바뀌면, 세계 자체가 바뀔 걸세.


마지막 여행 El Viaje Definitivo 후앙 라몬 히메네스


…그리고 나는 떠나리라. 그러나 새들은 남아서 노래하고

초록 나무가 자란 내 정원도 남고

그 우물도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

오후가 되면 파랗고 평화로운 하늘이 펼쳐지며

종탑의 종도 지금 이 오후처럼 울려 퍼지리라.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은 언젠가는 죽겠고

해가 바뀌면 읍내의 모습도 바뀌겠지만

나의 영혼은 언제나 꽃이 만발한 이 정원 구석에서

그리움 사무친 채로 돌아다니리라.


그게 바로 헤나로가 말한 감정이야.


주술사가 되려면 정열적이어야 해. 그리고 정열적인 인물은 세속적인 소유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갖고 있기 마련이지. - 그런 것들조차 없다면, 단지 그가 걷는 길이라도 말이야.


헤나로가 자네에게 해준 얘기는 바로 그런 뜻이었어. 헤나로는 익스틀란에 소중한 것들을 두고 왔다네. 고향, 친지들, 그밖에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을 말이야. 그리고 지금 그는 그런 감정들 속에서 거니는 중이고, 본인이 말했듯이 이따금 익스틀란에 거의 도달할 때가 있지. 우리들 모두가 같은 걸 가지고 있어. 헤나로에게 그건 익스틀란이고, 자네에겐 로스앤젤레스이고, 내겐...


“나는 떠났노라. 그리고 새들은 뒤에 남아서 노래했노라.”


오직 전사만이 앎의 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네. 왜냐하면 전사란 인간이라는 사실의 끔찍함과 인간이라는 사실의 경이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은 맑고 평온했다. 그들의 눈은 나의 내부에 압도적인 그리움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감정을 주체 못하고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아내려던 찰나, 걷잡을 수 없었던 감정의 파도가 저지되었다. 그 순간 나는 ‘보았다’고 생각한다. 눈앞에서 거대한 파도 같은 인간의 고독함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은유의 벽에 가로막혀 얼어붙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나의 슬픔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던 탓에 되려 고양감이 몰려왔다. 나는 그것을 포용했다.


여기 자네를 두고 가겠네. 뭐든 자네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게나. 맹우는 들판 가장자리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걸세.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안 가도 돼.

억지로 한다고 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야. 살아남을 작정이라면 자넨 수정처럼 명징한 동시에 완벽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네.


돈 후앙은 내게 시선을 주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돈 헤나로는 두 번 뒤를 돌아보며 눈을 끔벅하고 턱을 움직여 전진하라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고 있다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서 그곳을 떠났다. 아직 때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_어떤 사상의 가치는 그것을 주장한 인물의 진지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네. 사실, 덜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그 사상은 추상적으로 순수해질 공산이 크지. 본인의 욕구와 욕망과 편견에 물들지 않으니까 말이야.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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