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카스타네다 1

조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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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후앙의 가르침>

 

머리말


내가 체험한 것은 실제적이고 실험적인 수단을 통해 행해지는, 어떤 일관된 신념체계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페요테(Lophophora williamsi)

짐슨 위드(Datura inoxia wyn. D. meteloides, 다투라, 악마초)

버섯 (Psilocybe mexicana로 추정)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유럽인들과 접촉하기 전부터 이 세 식물의 환각적 성질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런 성질 덕에 이 식물들은 쾌락이나 치료, 주술, 그리고 황홀경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널리 쓰였다. 돈 후앙은 그의 가르침과 직결된 특수한 맥락에서, 다투라와 버섯 사용을 그가 ‘맹우’라고 부르는 힘의 획득에 결부시켰고, 페요테 사용을 지혜 내지는 ‘올바로 살기 위한 지식’의 획득에 결부시켰다.


돈 후앙의 입장에서 이런 식물들은 인간에게 특수한 지각의 단계를 경험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돈 후앙은 비일상적 현실 상태야말로 유일하게 실제적인 배움의 방식이자 힘을 얻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역설했고, 가르침의 다른 부분들은 힘의 획득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내비쳤다.


돈 후앙의 신념체계에서 맹우를 얻는다는 행위는, 전적으로 그가 환각성 식물을 써서 내게 경험토록 한 비일상적 현실 상태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돈 후앙은 내가 겪은 낱낱의 체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충실하게 회상하고, 그것을 완전히 구술해보기를 요구했다.


서문


카를로스 카스타네다는 돈 후앙의 지도하에 우리를 황혼의 순간으로, 낮과 밤 사이에 있는 우주의 틈새를 지나 우리 세계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류의 현실 속으로 이끈다. 카스타네다는 메스칼리토, 예르바 델 디아블로, 그리고 우미토 -페요테, 다투라 그리고 버섯 - 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 도달했다.


우리 세계 이외의 다른 세계들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의 가장 중요한 의의는 (이것은 인류학 자체의 의의와도 직결된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우리들의 세계 또한 하나의 문화적 구조물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카를로스 카스타네다)


내가 필드워크를 통해 수행한 일을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야키 인디언 주술사sorcerer인 돈 후앙 마투스는 고대 멕시코 샤먼들의 <인지cognition>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여기서 인지란 일상생활의 의식을 책임지고 있는 심적 과정을 의미하며, 기억, 경험, 지각, 그리고 해당 언어의 능숙한 사용을 포함한다. 그 무렵의 나에게 이 <인지>라는 개념은 가장 강력한 장애물로 작용했다. 나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서구인의 입장에서는 우리 시대의 철학적 담론에 의해 정의된 <인지>가, 인류 전체에 공통된 균질적이고 포괄적인 과정이 아닐 수가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특이하다면 우리 같은 서구인도 서로의 문화적 인식 차이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만, 문화 차이가 기억, 경험, 지각, 고도의 언어 사용 능력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심적 과정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바꿔 말해서, 서구인에게 <인지>란 보편적인 일단의 심적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돈 후앙과 그 계열의 선배 주술사들에게 현대인의 <인지>와 고대 멕시코 샤먼들의 <인지>는 완전히 상이한 별개의 것이다. 돈 후앙은 이 두 가지를 각기 다른 일상들로 이루어진, 본질적으로 상이한 세계로 간주한다. 나는 어떤 순간부터 나의 작업이 인류학적 정보수집으로부터 샤먼들의 세계를 이루는 새로운 인지 과정들을 내면화하는 일로 불가해하게 바뀌는 경험을 했다.


그런 원리를 실제로 내면화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변성을 수반하며, 당사자는 일상 세계에 대해 전과는 다르게 반응할 것을 요구받는다. 샤먼들은 일견 추상적이지만 뜻밖에도 강력한 저류를 품고 있는 개념들에 대한 지적인 애착이 언제나 이런 변성 과정의 단초를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돈 후앙이 다음과 같이 설명했듯이 말이다. “일상적 삶의 세계는 결코 우리를 지배하거나, 창조 또는 파괴할 수 있는 개인적인 대상이 아니라네. 주위 세계와의 알력 따위는 결코 인간의 진짜 투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지. 진짜 전쟁터는 범인은 상상할 수도 없는 지평선 너머의 영역에 존재하네. 인간이 인간이기를 그치는 곳에 말일세.”


돈 후앙은 이런 말들의 의미를 내게 설명해주었고, 에너지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 존재의 유일한 목적은 <무한infinity>과의 만남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 <무한>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없으며, 에너지적으로도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인격화할 수 없고, 비유할 수조차 없으며, 단지 무한함lo infinito같은 모호한 용어를 써서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말을 들었을 당시 나는 돈 후앙이 단지 지적으로 흥미로운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에너지적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토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돈 후앙에게 에너지적 진실이란 그의 계열에 속한 그와 샤먼들이 <보기seeing>라고 부르는 투시 작업을 수행하다가 도달하게 된 결론이었다. 여기서 <보기>란 우주를 흐르는 에너지를 직접 지각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직접 투시하는 능력은 샤머니즘의 오의奧義중 하나다.


돈 후앙 마투스에 의하면 고대 멕시코의 인지 속으로 나를 안내하는 과업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돈 후앙이 내게 했던 일들은 과거 모든 시대의 샤머니즘 전수자들이 겪었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인지의 과정을 내면화하는 작업의 첫 번째 단계는 항상 샤머니즘 전수자로 하여금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함으로써 시작된다. 돈 후앙 계열의 선배 샤먼들은 전수자가 더 이상의 환원이 불가능한 이 에너지적 진실을 완전히 체화함으로써 이 새로운 인지를 받아들이게 된다고 믿었다.


돈 후앙 마투스 같은 샤먼들이 제자들에게서 끌어내려는 것 -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자각 - 은, 그 단순함으로 인해 오히려 지극히 얻기 어려운 것이 된다. 이 경우, 인간의 진짜 투쟁 상대는 같은 인간들이 아니라 <무한함>이 된다. 아니, 본질적으로는 투쟁이라기보다는 동의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우리는 이런 무한함에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하는 것이다. 주술사들의 세계에서 우리의 삶은 무한에서 비롯되고, 다시 그 원천으로 돌아간다. 무한으로.


내가 지금까지 출간한 저작물들을 통해 묘사한 수행 과정 대부분은 이 새로운 원리의 영향하에서 내 페르소나가 사회적 존재로서 자연스레 경험한 상호작용에 관련된 것이었다. 현장조사에 나선 내가 직면한 것은 새로운 <샤먼적 인지>의 과정을 내면화하라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요구였다. 나는 몇십 년 동안이나 내 페르소나와의 경계를 유지하려고 악전고투했지만, 결국 그 경계는 무너졌다. 돈 후앙과 그 계열 샤먼들에 의해 수행 목적에 비춰볼 경우, 그런 경계를 유지하려는 노력 자체가 무의미한 행위다. 그러나 자신의 욕구에 비춰본다면 이런 노력은 매우 중요했다. 자기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의 경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문명인에게 공통된 욕구이기 때문이다.


돈 후앙은 고대 멕시코 샤먼들의 <인지>의 초석이었던 <에너지적 진실>이란 우주의 모든 뉘앙스는 에너지의 한 표현이라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라고 말햇다. 오의를 터득한 샤먼들은 투시, 즉 에너지를 직접 <보는> 과정을 통해 전 우주가 서로 길항하는 동시에 보완적인 두 개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에너지적 진실>에 도달했다. 그들은 이 두 가지 힘을 생력과 무생력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런 투시를 통해 무생력이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샤먼들에게 의식이란 생력의 진동적 양태를 의미한다. 고대 멕시코의 샤먼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이 진동적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투시했다고 돈 후앙은 말했다. 샤먼들은 생명체들을 <유기적 존재>라고 불렀고, 그런 에너지의 응집력과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생명체들 자신이라는 사실을 투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체적인 응집력과 진동적 생력을 갖췄지만 생명체에 구속되지 않은 다수의 존재들도 투시했다. 샤먼들은 이것들을 <무기적 존재>라고 불렀다. 그들은 이것이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응집된 에너지 덩어리라고 규정했고, 스스로를 인식하며 생명체 특유의 접합력과는 다른 종류의 접합력에 의해 규정되는 통일성을 갖춘 존재로 묘사했다.


돈 후앙과 같은 계열의 고대 샤먼들은 우주에 충만한 에너지를 지각 정보로 변환하는 것이야말로 이 두 가지 존재의 본질적 존재 양태임을 투시에 의해 간파했다. 유기적 존재의 경우, 이렇게 변환된 지각 정보는 하나의 해석체계를 이룬다. 이 해석체계 안에서 우주 에너지는 소정 방식으로 분류되고, 분류된 에너지에는 각각 특정한 반응이 할당된다. 고로 무기적 존재의 영역에서 무기적 존재가 만들어낸 지각 정보의 경우는, 응당 그들만의 불가사의한 해석체계를 통해 처리된다고 주술사들은 주장한다.


인간의 지각 정보를 처리하는 해석체계는 앞서 언급한 인간의 <인지>에 해당하며, 이런 인간의 <인지>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인지란 결국 하나의 분류법에 불과하고, 지각 정보를 해석하고 적당한 반응의 범주를 찾아내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인지>를 중단시킬 경우, 인간은 우주 속을 흐르는 에너지를 직접 지각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주술사들이 묘사하는 바에 따르면,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지각하는 행위는 마치 눈으로 직접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한다. 여기서 실제 눈이 수행하는 역할은 미미하지만 말이다.


주술사들은 에너지를 직접 지각함으로써 인간이 빛을 발하는 공 모양의 에너지장 복합체인 것을 알아냈다. 이들은 그런 식으로 인간을 투시함으로써 에너지에 관련된 경악할 만한 결론을 도출했다. 개개인의 이런 광구가 우주에 존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에너지 덩어리에 개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이 에너지의 집합을 <인식의 어두운 바다>라고 불렀고, 각 개인의 광구가 이 바다와 연결되는 지점은 광구 자체보다 한층 더 밝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샤먼들이 이 접속 지점에 <조합점Assemblage Point>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인간의 지각이 바로 그 지점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우주적 에너지의 흐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지각 정보로 변환되며, 그 정보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 해석된다.


돈 후앙에게 이런 에너지의 흐름이 지각 정보로 바뀌는 과정에 관한 설명을 청하자, 샤먼들은 단지 <인식의 어두운 바다>라고 불리는 이 방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에너지를 지각 정보로 변환하기 위해 필요한 그 무엇인가를 인간에게 공급해준다는 사실밖에는 알아내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현상의 배후에 있는 원천 자체가 워낙 광막한 탓에, 그 과정을 해독하려는 시도 자체가 성립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고대 멕시코의 샤먼들은 이 인식의 어두운 바다에 초점을 맞춰 투시함으로써 전 우주가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빛을 발하는 실filament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샤먼들은 이 빛나는 실들이 결코 서로와 접촉하지 않은 채로 모든 방향을 향해 뻗어나간다고 묘사했다. 투시를 통해 보면 개개의 독립된 실이지만, 그와 동시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한 크기의 집단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샤먼들은 인식의 어두운 바다를 찾아내고 그 진동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 밖에도 <의도intent>라고 이름붙인 빛나는 실 뭉텅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개개의 샤먼이 그런 실 다발에 초점을 맞추고 주의력을 기울이는 행위를 그들은 <의도적 주시intending>라고 불렀다. 그들은 전 우주가 이런 <의도>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투시했으며, 그들 입장에서 <의도>는 지성과 동일했다. 고로 그들에게 우주는 궁극의 지성을 담은 그릇이었다. 그들은 자기 인식력을 갖추고 진동하는 에너지는 엄청난 지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 결론은 그들의 <인지적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은 우주적 <의도>의 집합이야말로 삼라만상의 변천, 우주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변화의 원인임을 깨달았다. 변화는 자의적이고 맹목적인 상황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진동하는 에너지가 원초적인 에너지 흐름의 차원에서 행한 <주시>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돈 후앙은 인간은 일상적으로 이런 <의도>와 <주시>를 써서 세계를 해석한다는 점을 지적했고, 나 자신의 일상적 세계는 나의 지각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지각의 해석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돈 후앙은 당시 내게는 최고로 중요했던 <대학university>의 개념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 대학이란 개념이 내 오감을 써서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했다. 왜냐하면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은 이 개념에 관한 그 어떤 실마리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개념으로서의 대학은 오로지 내가 그것을 의도적으로 <주시>함으로써 성립한다. 그리고 그런 개념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문명인으로서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우주가 빛을 발하는 실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에너지적 진실>의 발견은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개개의 실은 에너지의 장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주술사들은 빛을 발하는 실들 -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특징을 가진 에너지장들 -이, 앞서 언급한 <조합점>으로 수렴되고, 그것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이 <조합점>의 크기가 현대인이 쓰는 테니스공만 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따라서 이 지점으로 수렴하고, 통과할 수 있는 에너지장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한하다.


<조합점>을 직접 투시한 고대 멕시코의 주술사들은 <조합점>을 통과하는 개개의 에너지장이 주는 충격이 인간의 지각 정보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런 지각 정보는 해석을 거쳐 일상적 세계의 <인지>를 형성한다. 주술사들은 인류의 <인지>가 균질하다는 점에 주목했고, 전 인류의 <조합점>이 에너지 광구의 동일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조합점>은 견갑골 높이에서 인간의 등 뒤로 팔 하나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광구의 경계에 거의 맞닿은 상태로 존재한다.


투시를 통해 <조합점>을 계속 관찰한 주술사들은 인간이 통상적인 수면을 취하거나. 극도의 피로를 느끼거나, 병에 걸리거나, 환각성 식물을 섭취했을 때 이 <조합점>의 위치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술사들은 <조합점>이 새로운 위치로 이동했을 때 원래와는 상이한 에너지 다발이 그것을 통과하는 광경을 투시했다. 이럴 경우에도 <조합점>은 해당 에너지장들을 지각 정보로 변환해서 해석할 것을 요구받으며, 그 결과 당사자는 실질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지각하게 된다. 주술사들은 이런 방식으로 생겨나는 세계들 하나하나가 포괄적이며 완전한 세계이며, 일상적인 세계와는 다르지만, 그곳에서 살고,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 세계와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돈 후앙 마투스 같은 샤먼이 <주시>를 하는 경우, 스스로의 <조합점>을 의도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인간 존재를 이루는 에너지장 집합체에 있는 특정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몇천 년에 걸친 탐구 끝에, 돈 후앙의 직계 선배들은 인간 존재를 이루는 광구 내부에 <조합점>이 자리 잡을 수 있는 특정 지점들이 존재하며, 그런 <조합점>에 가해지는 해당 에너지장들의 세례가 각각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돈 후앙은 모든 인간은 이런 세계들 일부 또는 전부로 여행할 수 있는 잠재력을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았으며, 이것이 부인할 길이 없는 <에너지적 진실>임을 보증했다. 이런 세계들은 단지 묻기만 해도 해답이 나오는 질문처럼 만지면 닿을 곳에 있으며, 주술사나 보통 사람이 그곳에 도달하려면 단지 <조합점>을 <주시>함으로써 그것을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고대 멕시코의 샤먼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의도>와 관련이 있지만 보편적인 <주시>의 차원으로까지 치환되는 문제는, 우주 자체가 우리를 계속적으로 밀고, 당기며, 시험한다는 <에너지적 진실>이었다. 우리를 둘러싼 전 우주가 극단적으로까지 포식적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에너지적 진실>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쓰인 포식적이라는 표현은 약탈이나 도둑질, 또는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거나 착취하는 약육강식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대 멕시코의 샤먼들에게 우주의 포식적 특성이란 우주의 <주시>가 부단하게 자각의식awareness을 시험하는 상황을 의미했다. 그들은 우주가 무수하게 많은 <유기적 존재>와 무수하게 많은 <무기적 존재>를 창조하는 광경을 투시했다. 우주는 이 모든 존재들에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그들이 스스로의 자각의식을 강화할 것을 강요하고,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자각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샤먼들의 <인지적 세계>에서 궁극적 문제는 자각의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돈 후앙 마투스와 그 계열의 샤먼들은, 자각의식이란 단지 해당 문화가 허용하는 범위의 지각 영역뿐만 아니라 -문화는 오히려 구성원들의 지각능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 인간의 모든 지각적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인식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돈 후앙은 인간의 모든 지각능력을 해방하거나 자유롭게 풀어주는 행위는 인간의 본연적 행동에 그 어떤 식으로도 간섭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사실, 새로운 가치를 획득함으로써 본연적 행동의 중요성은 오히려 극대화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인간의 본연적 행동에 대한 요구가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관념성과 가짜 목적의식의 미로에서 빠져나온 인간에게 유일한 지표가 되어주는 것은 그의 본연적 기능이다. 샤먼들은 이것을 <완전무결함>이라고 불렀다. 그들 입장에서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최선을 다하거나,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들은 우주를 흐르는 에너지를 직접 투시함으로써 인간의 본연적 행동을 도출해냈다. 만약 에너지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흐른다면, 그들에게 이런 흐름을 따라가는 행위는 본연적 행동에 해당한다. 따라서 샤먼들에게 본연적 행동이란 그들의 <인지적 세계>의 <에너지적 진실>과 직면하는 수단을 제공해주는 공통 분모인 것이다.


<주술사의 인지>를 형성하는 모든 단위요소들을 활용함으로써 돈 후앙과 그의 선배 주술사들 전원은 기묘한 에너지적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결론은 일견 그들과 그들의 개인적 상황에만 들어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의 깊게 검토해본다면 우리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 후앙은 샤머니즘적 탐구의 오의를 단지 주술사들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궁극의 <에너지적 진실>로 간주했다. 그는 이것을 <궁극적 여정>이라고 불렀다.


<궁극적 여정>이란 샤먼의 인지 체계를 따름으로써 극한까지 강화된 개인의 자각의식이, 해당 생명체가 하나의 일관적인 단위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시점을 넘은 뒤에도 - 바꿔 말해서, 죽은 뒤에도 -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고대 멕시코의 샤먼들은 이런 초월적 자각의식을 인간 개인의 자각의식이 기지의 모든 것을 넘어서고, 같은 방식으로 우주를 흐르는 에너지의 차원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해했다. 돈 후앙 마투스 같은 샤먼들은 자신들의 여정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기적 존재>, 바꿔 말해서 생명체에 깃들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자각하며, 응집력을 가진 하나의 단위로서 행동할 수 있는 에너지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인지체계의 이러한 측면을 <완전한 자유>라고 불렀다. 이것은 자각의식이 사회화나 논리체계의 속박을 벗어나 자재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상은 내가 고대 멕시코 샤먼들의 <인지>속에 몰입한 끝에 이끌어낸 전반적인 결론이다. 돈 후앙 마투스가 내게 제시한 것이 인지체계의 총체적 혁명이란 사실을 내가 깨달은 것은 ‘돈 후앙의 가르침- 야키 족의 지혜’를 출간하고 나서 몇 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 이후 출간한 책들을 통해 나는 이런 인지적 혁명을 유발하기 위한 절차가 어떤 것인지를 간략하게나마 설명해보려고 노력했다. 돈 후앙이 내게 살아 있는 세계를 소개해주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런 살아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과정은 결코 멈추지 않는 법이다. 그런 연유로, 독자에게 제시되는 결론은 단지 새로운 <인지>의 지평 속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도구 내지는 실천적 장치일 뿐이다.




제1부 가르침


##1


‘장소’를 찾다, 기분이 자연스레 편해지고 기력이 차오르는 장소


그 지점을 찾았다는 완전한 확신이 들 때까지 확인가능한 모든 지점을 직접 ‘느껴’봐야 한다.


메스칼리토에 관해 배우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고 싶다면 이것이 유일한 방법

무엇을 배우든 간에 기초부터 힘들게 배워야 한다.


잠시 후 주위의 어둠이 변화했다. 내 눈 바로 앞에 있는 지점을 응시하자 시야 주변부 전체가 선명한 녹황색으로 물들었다. 이 현상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나는 정면의 그 지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엎드린 몸을 조금씩 옆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흙마루 중심 부근의 한 지점에서 색조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자각했다. 오른쪽, 아직 내 시야 주변부에 들어 있는 지점에서 녹황색이 선명하기 그지없는 자줏빛으로 변했던 것이다. 그쪽에 주의를 집중하자 자줏빛은 스러지면서 희끄무레하지만 여전히 눈이 아플 정도로 선명한 색으로 변했고,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은 계속 그 색조를 유지했다.


그 장소에선 어떤 느낌이 느껴지는가.


배우고 싶다면 불굴의 정신을 지녀야 한다.


두려움, 공황의 장소

잠이 든 장소


좋은 장소는 시티오sitio, 나쁜 장소는 적enemy

이 두 장소는 인간, 특히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안위의 열쇠가 된다고 대답했다. 자기의 장소에 앉는 행위만으로도 더 강한 힘이 솟아나는 반면, 적은 당사자를 약화시키고 죽음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였다.


세상에는 이와 유사한 장소가 많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는 최상의 방법은 각각의 색채를 감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메스칼리토는 농담거리가 아닐세. 자네의 능력을 최대한 통제할 수 있어야 해. 

일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런 다음에 비로소 그를 만나게 될거야. 

메스칼리토는 매우 굳은 의지를 요구한다네.


##2


페요테 단추button. 재례용으로는 보통 몸통 윗부분만 둥글고 납작하게 잘라내서 건조시키므로 이렇게 불린다.


메스칼리토는 이따금 어린애처럼 장난스러울 때가 있네.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칠 때도 있지만 말이야. 장난치면서 놀거나, 엄청나게 진지하거나 둘 중 하나랄까.


지식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천적은 두려움이야.


“사람은 전쟁터에 나가듯이 활짝 깨어 있는 상태로, 두려움과 경의와 절대적인 자신감을 품고 지식을 향해 나아간다. 이와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향해 나아가거나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잘못이고, 누구든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자는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맹우ally란 사람이 도움과 충고와, 크든 작든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자기 삶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힘으로서, 사람의 삶을 향상시키고 행동의 길잡이를 해주고 지식을 더욱 넓혀주는 데에 꼭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맹우는 지식 획득에 필수불가결하다고 했다. 돈 후앙은 강력한 확신을 담아 이 말을 강조했다. 그는 주의 깊게 단어를 골라서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맹우는 자네에게 그 어떤 인간도 알려줄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고, 깨우치게 해줄 걸세.”


메스칼리토는 다른 종류의 힘일세. 독자적인 힘이지. 수호자이자, 스승이라네.


맹우를 길들이고 이용하는 것처럼 메스칼리토를 길들이고 이용할 수는 없어. 메스칼리토는 자네 밖에 존재하네. 누구든 그 앞에 서는 사람에게 여러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메스칼리토는 올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는 스승.


메스칼리토에 관해 가르쳐줄 사람은 메스칼리토밖에는 없으며, 바로 이런 성질이 그를 독자적인 힘으로 만드는 것. 그는 누구에게나 똑같은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맹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가르침을 받고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소정의 단계 내지는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맹우란 사람을 그 자신의 경계 너머로 데려가줄 능력을 가진 힘이라네. 그렇게 해서 그 어떤 인간도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을 알려주는 거지.


메스칼리토가 자네를 자네 밖으로 데려가는 건 자네를 가르치기 위해서야.

맹우는 자네를 데려가서 힘을 준다네.


배움은 인간이 도전할 수 있는 가장 힘든 과업.


누구든 배우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내가 그 장소를 찾으려고 했을 때처럼 최대한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며, 배움의 한계는 그의 기질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식에 대해서 말로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게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그는, 어떤 종류의 지식은 내 힘으로 다루기에는 너무 강력해서 그런 것에 대해 말로 얘기하는 것은 내게 해가 되기만 할 뿐이라고 했다.


#3


다투라.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 힘은, 뿌리가 땅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갈수록 한층 더 강력하고 다루기가 위험해진다네. 4야드(약 3.66미터)깊이까지 경험한다면 영속적인 힘, 끝이 없는 힘의 근원을 손에 넣게 된다는군. 옛날에도 그런 일을 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지금은 아예 없지.


메스칼리토는 교사이지. 개인적인 이유를 위해 쓸 수 있는 힘이 아니네.


내 맹우인 스모크의 지시를 따라서 내가 나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스모크는 뭐든 할 수 있네. 뭐든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스모크는 모두 대답해주지. 단지 지식을 주는게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해나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네. 스모크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맹우라네.


‘악마초는 힘을 얻고 싶어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스모크는 관찰하고 이해하고 싶어하는 자들을 위한 겻이다’


내가 보기에는 스모크에 비견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네. 일단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그 밖의 모든 힘은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으니까. 스모크는 정말이지 최고야! 물론 그걸 터득하려면 평생이 걸리지만 말이야. 필수불가결한 두 가지 요소, 즉 파이프하고 그걸로 피울 혼합물과 친해지는 일만으로도 몇 년이나 걸린다네. 내 파이프는 내 은사가 준 건데, 몇 년 동안이나 계속해서 그걸 어루만진 뒤에야 내 것이 되었어.


스모크 혼합물은 내가 아는 가장 위험한 물질 중 하나라네. 그 누구도 지도를 받지 않고서는 조제할 수가 없어. 스모크는 그 가호를 받는 사람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치명적인 독이라네! 파이프와 혼합물을 다룰 때는 최대한 신중을 기해야 해. 그리고 그걸 배우려는 사내는 견실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단련해야 하지. 워낙 무시무시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한 모금만 살짝 빤다고 해도 아주 강한 사내가 아니면 견딜 수가 없어. 처음 시작할 때는 끔찍하고 혼란스럽겠지만 갑자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거지!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가 말이야! 이러면 스모크는 자네의 맹우가 되어주고, 생각조차 못하던 세계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줌으로써 모든 의문을 풀어줄거야. 그것이 스모크의 가장 위대한 성질이고,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네.


혼합물의 진짜 비밀은 버섯에 있다네.


버섯은 가장 구하기 힘든 재료이기도 하지. 그것이 자라는 장소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고, 올바른 종류를 골라내는 일은 그보다도 더 위험하다네. 그 근처에는 다른 종류의 버섯들이 함께 자라는데, 이것들은 아무 쓸모도 없지. 모르고 함께 말렸다가는 멀쩡한 것들까지 망쳐버려.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로 버섯에 관해 잘 알려면 시간이 걸린다네. 자칫 다른 종류를 썼다가는 심각한 해를 입을 수 있다네. 그걸 피우는 사내와 파이프, 양쪽 모두 말이야. 나는 불순물이 든 스모크를 피우다가 그대로 죽어버린 사내를 알고 있네.


대통에 들어 있는 혼합물을 모두 피우고 기다려야 해. 그럼 스모크가 올걸세. 자넨 그걸 느낄 거고 스모크는 자네를 해방시켜서 뭐든지 보고 싶은 걸 보게 해줄 거야. 정확히 말하자면, 스모크는 대적할 자가 없는 맹우라네. 하지만 누구든 그걸 찾는 자는 일단 나무랄 데 없는 의지와 결의를 갖춰야만 해. 그게 필요한 이유는, 돌아오려는 의지와 목적의식이 없으면 스모크가 그를 돌려보내주지 않기 때문이지. 그 다음엔 스모크가 보여준 것들을 기억하기 위한 의지와 결의도 있어야 하네. 안 그러면 마음속엔 한 덩어리의 안개밖에 안 남아 있을 테니까 말이야.


<식자의 네 가지 천적>


첫 번째 천적, 공포. 공포에 못 이겨 도망친다면 그걸로 끝이야. 다시는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결코 식자가 될 수 없는거지. 난폭해지든 아니면 두려움에 찬 무해한 인간이 되든 간에, 언제나 패배자로 남을 거야.

아무리 공포로 가득 찬다고 해도, 결코 멈춰서는 안 되네. 그게 규칙이야! 첫 번째 천적이 물러나는 순간이 오면 자신감을 느끼기 시작하지. 의지가 강해지고 더 이상 배우는 걸 공포스럽게 여기지 않게 돼.

한 번 공포를 쫓아버리고 나면 그는 남은 일생 동안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네. 왜냐하면 그는 두려움 대신 명료함을, 즉 두려움을 지워버리는 명료한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지. 그 무렵에는 자신의 욕구를 자각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그걸 충족시킬 수 있는지도 알게 되네. 앞으로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도 예상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예리하고 명료하게 파악되지. 그는 그 어떤 것도 장막에 가려져 있지 않다고 느끼네.


두 번째 천적, 명료함. 마음의 명료함은 얻기도 힘들고 공포를 쫓아주지만, 동시에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다네. 명료함은 자신에 대한 의문을 결코 품지 않게 만들거든. 모든 것이 명료하게 보이기 때문에,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거야. 용감한 것도 명료하기 때문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것도 명료하기 때문이야.

두 번째 천적에 의해 식자가 되는 걸 단박에 저지당하고 대신 그는 낙천적인 전사가 되거나 어릿광대가 될 수도 있네. 그래도 그토록 큰 대가를 치르고 획득한 명료한 마음이 어둠이나 두려움으로 변하는 일은 결코 없다네. 살아 있는 동안은 줄곧 그렇게 매사가 명료할 거야. 하지만 더 이상 배울 수는 없고, 뭔가가 되고 싶다고 동경하는 일도 없어.

자신의 명료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단지 관찰하기 위해서만 그걸 쓰고 새로운 일에 착수할 때는 끈기를 가지고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특히 자신의 명료함이 거의 오류에 가깝다는 점을 명심해야 하네. 그렇다면 그것이 단지 눈앞에 있는 허공 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두 번째 천적을 극복할 수 있고, 아무것도 그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그런 경지에 도달하게 되네. 이것은 오류가 아니야. 이건 허공 속의 한 점에 불과하지 않아. 그건 진짜 힘이 될거야.

그 시점에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추구해온 힘이 마침내 자기 것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네. 그걸 가지고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지. 그는 맹우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그가 원하는 것이 곧 규칙이 돼.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어.


세 번째 천적, 권능. 무적이 된다. 명령을 내리는 위치.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다가, 막판에 가서는 아예 자기가 규칙을 만들어내지. 지배자는 다름 아닌 그니까 말이야. 이 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 번째 적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거의 깨닫지 못하지. 그러다가 갑자기, 불시에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는 거야. 그건 세 번째 적이 그를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사내로 만들었기 때문이야.

그러나 결코 명료함이나 권능을 잃지는 않네. 권능에 의해 패배한 사람은 그걸 다루는 방법을 제대로 모르는 채로 죽는다네. 권력은 그의 운명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에 불과해. 그런 사내는 자기를 통제할 줄 모르고, 언제, 또 어떻게 자신의 힘을 써야 할지를 모른다네.

물론 궁극적인 패배야. 일단 이런 적들에게 압도당한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네. 일단 굴복하면 그걸로 끝나는 거야. 자포자기하면 끝.

의도적으로 그 유혹에 저항해야 하네. 그가 복속시킨 것처럼 보이는 그 권능이 실제로는 결코 그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항상 자제하고, 그때까지 배운 모든 것을 신중하게, 성실한 태도로 다뤄야 해. 자제력이 수반되지 않은 명료함과 권능은 실패보다 더 나쁜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모든 것을 자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네. 그러면 자신의 권능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알 수 있게 되지. 그렇게 해서 그는 세 번째 적을 물리칠 것이네.

이 무렵이면 그는 배움의 여정의 끝에 다다르게 되고 거의 아무런 경고도 없이 최후의 적과 마주치게 되네.


바로 노년이야. 이건 가장 잔인한 적이라네. 이 적을 완전히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고, 단지 계속 싸우는 수밖에 없어.


피로를 벗어던지고 주어진 운명을 끝까지 완수한다면, 비로소 그는 식자라고 불릴 수 있다네. 마지막으로 찾아온 불패의 적에 대항해서 비록 순간적으로만 승리했다고 해도 말이야. 명료함과 권능과 지식의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4


악마초는 사람을 지켜주거나 하진 않아. 단지 힘을 줄 뿐이지.

반면에 메스칼리토는 상냥하고 마치 어린애 같다네. 일단 친해지고 나면 상냥하고 친절해.

그는 수호자이자 스승이야. 그는 힘이라네.

그를 늘 지니고 다니면 자네에게 결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준다네.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서 끈으로 팔이나 목에 걸고 다니면 돼.

그는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네.

사물을 보여주고 뭐가 뭔지를 가르쳐 주는 식으로.


온귀토스(버섯)


“황혼은 세계들 사이에 생겨난 균열이라네.”


눈이 침침해졌다. 그러다가 나는 느닷없는 고양감을 느꼈다. 흐느끼고 싶은 기이하고도 강렬한 충동이 몰려왔다!


메스칼리토가 누군가를 완전히 받아들이면, 사람이나 빛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단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다음에는, 메스칼리토는 언제나 일정한 모습을 취하지. 그 후로는 결코 바꾸는 법이 없다는 얘기야. 자네가 다음에 그를 만날 때는 빛일지도 모르겠군. 언젠가는 자네를 데리고 날면서 모든 비밀을 가르쳐줄 가능성조차 있어.


그런 수준까지 가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인한 인간이 되어야 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하네.


진실한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뜻하는 바가 있는 삶이라네. 바르고, 강인한 삶이지.



#5


악마초의 두 번째 부위는 보는 데에 쓰인다. 그걸 쓰는 사람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가서 어디든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다.

악마초는 힘을 구하는 자들을 위한 거야. 두 번째 부위를 정복하는 사람은 악마초를 써서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하여 더 많은 힘을 얻어낼 수 있네.


악마초는 수없이 많은 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네. 무엇이든 무수히 많은 길 중의 하나일 뿐이야. 그러니 길이란 단지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어야 하네. 그걸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거기 머물면 안 돼. 그리고 그런 명쾌한 태도를 얻기 위해서는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하네. 그럴 때만 비로소 길이란 그저 하나의 길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자네가 어떤 길을 계속 따라가거나 떠나려는 결정을 내릴 때는, 두려움이나 야심과는 무관한 상태여야 하네. 충고해두겠는데, 모든 길을 면밀하고 신중하게 관찰해야만 하네. 충분히 수긍이 될 때까지 얼마든지 그러란 말일세.


그 길에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가?


모든 길은 똑같다네. 어디로도 통해 있지 않지. 덤불을 헤치고 나아가는 길이든, 덤불로 들어가는 길이든 그게 그거야.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나긴 길을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 건 아냐.


확고부동한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감정은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는다. 감정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악마초의 두 번째 부위는 하늘을 날 때 쓰인다.

자네가 더 많은 걸 배우고, 날기 위해 이 부위를 자주 자용한다면 모든 것이 지극히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할 거야. 자넨 몇백 마일이나 하늘을 날아올라 원하는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볼 수 있고,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자네의 적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다네. 악마초와 친해지면 그녀는 자네에게 어떻게 하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지 가르쳐줄 거야.


#7


스모크.


박하, 차가운 열, 얼음조각에 찢기는 듯한 아픔.

살이 실제로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

지독한 공포


일어서려고 생각하자마자 저절로 몸이 일어섰던 것이다. 평소에 하던 대로 근육과 골격을 움직여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내 육체를 통제하지 못했고, 바닥에 엎어진 순간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장대에 대한 호기심이 너무나도 강렬했던 나머지, 일어나려고 ‘결심한’ 순간 나는 일어서고 있었다.


내가 더 이상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무엇이든 원하는 것으로 변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맹우로서의 스모크는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존재.


메스칼리토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 행동을 지도할 수 있으니까 수호자라고 불리는 거야. 메스칼리토는 올바로 사는 법을 가르쳐주지. 그리고 그는 사람의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볼 수 있다네. 반면에 스모크는 맹우야. 그건 자신의 존재를 결코 내보이지 않은 채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힘을 준다네. 스모크에게 말을 걸 수는 없어. 하지만 스모크는 육체를 앗아가서 자네를 공기처럼 가볍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사람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 단지 절대로 볼 수는 없어. 그렇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자네 몸을 앗아갔을 때처럼 상상하기도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사람에게 주는 거야.



#8


미토테mitote: 페요테로스(페요테 채집에 종사하는 멕시코계의 친족 집단)들과 제자들을 위한 페요테 의식


의식이 막판에 다다르자 노랫소리가 지극히 인상적으로 변했다. 한순간 나는 고양감을 느끼면서 흐느껴 울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노래가 끝나자 이런 감정은 곧 사라졌다.


메스칼리토가 와 있음을 알리는 귀에 익은 굉음


바로 그 순간, 예지가 노도처럼 몰려와서 나를 집어삼키는 것을 느꼈다. 과거 3년 동안이나 이래저래 억측만 하던 것은 이제 확신으로 바뀌었다. 로포포라 윌리엄시 Lophophora Williamsii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선인장 속에 든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실체로서 존재한다. 이것을 인식, 아니 발견하기까지는 3년이나 걸렸지만, 이제는 알았다.


들판에 자라는 페요테 하나하나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매우 밝은 빛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앉아 내 노래들을 불러주었다.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메스칼리토가 페요테에서 나왔다. - 내가 예전에 목격했던, 사람을 닮은 모습이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평소의 내 성격과는 상반되는 대담무쌍한 태도로, 나는 그를 향해 노래를 불렀다. 피리나 바람소리 같은, 귀에 익은 음악적인 진동이 느껴졌다. 그는 2년 전에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뭘 원하나?”라고 말한 듯했다.


내 삶과 행동에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건 알겠는데, 그게 뭔지를 알아내지 못하겠다고 말이다. 나는 내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간청했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 부를 수 있도록 그의 이름을 가르쳐달라고도 요청했다.


나는 엎드려서 페요테 윗부분을 먹었다. 그것은 내게 불을 붙였다. 내 몸 구석구석을 따스함과 솔직함으로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이 살아 있었다. 모든 것이 정교하고 복잡한 세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단순했다. 나는 모든 곳에 있었다. 위와 아래와 주위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수호자의 노래를 부르는 걸 들어보면 누가 가짜인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네. 오직 혼이 깃든 노래만이 그의 것이고, 그가 직접 가르쳐준 거야. 그 밖의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노래를 베낀 것이라네. 사람들은 이따금 그렇게 기만적이 되곤 하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는 거야.”


“메스칼리토의 의향이 뭔지를 정말로 알아차리고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리네. 그가 준 교훈이 분명해질 때까지 계속 생각해보게.”


#9


도마뱀들은 사람을 세계의 끝까지 데려갈 수 있고, 요청하기만 하면 실로 경탄할 만한 비밀을 보여줄 것이다.


무의미한 것들이란 뭡니까?


우리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 아무런 지침도 없을 때 절로 떠오르는 것들이지. 그건 악마초가 자네를 밀어내서 쫓아버리려고 한다는 듯이야.


너무 열정적인 태도로 그녀를 먹으면 안돼. 악마초는 식자의 비밀에 이르는 길들 중 단지 하나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그것 말고 다른 길들도 있다는 뜻일세. 그녀가 놓는 덫이란, 자네가 그녀의 길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끔 만드는 것라네. 단 하나의 길에만 자네의 인생을 허비하는 건 무익한 일이라는 뜻이야. 특히 그 길에 마음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경우엔.


그 길에 마음이 깃들어 있는지 어떤지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누구든지 알아차릴 수 있어. 문제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거지. 당사자가 자신이 마음이 깃들어 있지 않은 길을 택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을 무렵에는 길 쪽에서 그를 죽일 준비가 되어 있는 식이지. 그런 시점에서 멈춰서 깊이 생각해보고 스스로 길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라네.


그런 질문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돈 후앙?


그냥 물으면 돼


*


배우려는 욕구는 야심이 아닐세.

알고 싶어 하는 건 인간의 운명이야. 하지만 악마초를 추구하는 건 힘을 얻으려고 애쓰는 거고, 그게 바로 야심이라네. 배우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잖나. 악마초가 자네의 눈을 가리도록 놔두지 말게. 자넨 이미 그녀에게 걸려든 상태야. 악마초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힘을 가진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어.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거지. 하지만 그건 그녀가 놓은 덫이라네. 다시 말하겠는데, 마음이 깃들어 있지 않은 길은 적으로 변해서 당사자를 파멸시킨다네. 그렇게 죽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죽음을 추구하는 건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것과 같아.





#10


스모크는 정말로 무섭습니다, 돈 후앙. 정확한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라서.


자넨 누가 추켜세워주는 걸 좋아하는데 악마초는 자네를 추켜세워주기 때문일세. 여자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자네의 기분이 좋아지게 해주지. 반면에 스모크는 가장 높은 수준의 힘이고, 그는 가장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유혹하지도, 사로잡지도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일도 없다네. 그가 요구하는 건 오직 강인한 힘뿐이야. 악마초도 힘을 요구하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힘이라네. 여자를 상대로 할 때의 정력에 더 가깝다고나 할까. 반면에 스모크가 요구하는 힘은 마음의 힘이세. 자네에겐 그게 없어! 하지만 극소수의 사내들은 그걸 가지고 있어. 그래서 스모크에 관해 더 배워보기를 권하는 걸세. 그는 마음의 힘을 강하게 키워줘. 격정적이고 질투가 심하고 폭력적인 악마초와는 딴판이지. 스모크는 언제나 한결같다네. 그 길에서는 뭘 잊어버릴 염려가 없어.


깊은 무감각과 무거운 느낌.


“까마귀의 검은 깃털은 실제로는 은빛이라네. 까마귀들은 워낙 강렬한 빛을 발하기 때문에 다른 새들도 건드리지 않아.”


이해하고 고찰할 가치가 있는 경험은 단지 까마귀가 등장하는 경험뿐이며, 그 밖의 다른 계시들은 내 두려움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스모크와 함께 하려면 강인하고 조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위험한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나는 돈 후앙에게 더 이상 계속할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버섯에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부분이 있었다.


이번 환각 체험에서 기억해낸 이미지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일상적인 시각과는 구조적으로 상이한 방법으로 그 세계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겪어본 다른 비일상적 현실의 상태들의 경우, 내가 시각화한 형태와 패턴은 언제나 세계에 대한 나의 시각적 관념의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환각성 스모크 혼합물의 영향하에서 보는 느낌은 그와는 동일하지 않았다. 내가 눈앞에서 본 것들은 모두 정면의 시야에 들어온 것들이었다. 그 시야 위쪽이나 아래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평탄했지만, 그와 동시에 당혹스러울 정도의 깊이감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이미지들은 다른 종류의 빛의 장 속에 형성된 믿기 힘들 정도로 정밀한 세부의 밀집체라고 묘사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 장들 속의 빛은 회전 효과를 만들어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본 이런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돈 후앙에게 묻자, 내가 까마귀로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므로 그 이미지들은 명료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으며, 나중에 더 훈련을 쌓으면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내가 감지했던 빛의 움직임의 차이를 화제에 올렸다.

“살아있는 것들은 안쪽에서 움직이네.” 돈 후앙은 말했다.

“그리고 까마귀는 그런 움직임이 아예 멈췄거나, 아니면 느려지면서 멈추려는 것을 보고 죽은 것이나 곧 죽으려는 것을 쉽게 알아보지. 뭔가 너무 빠르게 움질일 때도 알아차리고,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 역시 곧바로 알아본다네.”

“너무 빨리 움직이거나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는게 무슨 뜻입니까?”

“뭘 피하고, 뭘 찾아야 하는지를 까마귀는 실제로 안다는 뜻이야. 무엇인가가 내부에서 너무 빨리 움직인다면 곧 격렬하게 폭발하거나 앞으로 튀어나올 거라는 뜻이고, 그러면 까마귀는 그걸 피한다네. 무엇인가가 내부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면 그것은 보기 좋은 광경이어서 까마귀는 그런 걸 찾아다니지.”

“바위도 내부에서는 움직입니까?”

“아니. 바위나 죽은 동물이나 죽은 나무는 움직이지 않네. 하지만 바라보면 정말 멋지지. 그래서 까마귀들은 시체 주위에 모이는 거야. 그걸 구경하는 걸 좋아하거든. 그 내부에서는 아무 빛도 움직이지 않아.

“시체 살이 썩을 경우는 변하거나 움직인다고 할 수 없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건 다른 종류의 움직임이야. 그럴 경우 까마귀는 살 내부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이 독자적인 빛을 발하면서 움직이는 것을 본다네. 까마귀는 바로 그런 걸 보기를 좋아하지. 그건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이라네.”

“돈 후앙 당신도 그걸 본 적이 있습니까?”

“누구든 까마귀가 되는 법을 터득하는 사람은 볼 수 있네. 자네도 보게 될 거야.”


스모크는 힘을 추구하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보는 걸 갈망하는 자들만을 위한 거야. 내가 까마귀가 되는 법을 터득한 건 그들이 새들 중에서도 가장 유용하기 때문이라네. 배고픈 독수리라면 모를까, 까마귀를 건드리려는 새는 없다네. 설령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까마귀는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니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 인간도 까마귀를 건드리지 않고. 중요한 건 바로 그 점일세. 인간이라면 누구든 커다란 독수리, 특히 희귀한 독수리에 주목하네. 그 밖의 크고 희귀한 새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누가 까마귀 따위에 신경을 쓰겠나? 까마귀는 안전해. 크기도, 성질도 이상적인 데다가, 남의 주의를 끌지 않고 어디든 안전하게 갈 수 있지.



#11


영혼을 잃은 사람은 보통 시내나 강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에 홀려 목숨을 잃는 수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특히 배워야 할 것은 세계들 사이의 균열을 찾아서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이야. 디아블레로들의 세계와 살아 있는 인간들의 세계, 이 두 세계 사이에는 틈새가 존재한다네. 그리고 이 두 세계가 겹치는 장소가 있지. 균열은 바로 그곳에 있고, 바람에 날린 문처럼 열렸다 닫혔다 한다네. 거기까지 가려면 우선 의지력부터 단련해야 해. 의지력을 갈망한다고나 할까. 일심으로 투신할 태세를 길러야 하는 거야. 하지만 그 어떤 힘이나 다른 인간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래야 하네. 자신의 육체가 그런 길을 떠날 채비를 갖추는 순간까지, 심사숙고하고, 소망하란 말일세. 사지가 오랫동안 덜덜 떨리고 격렬한 구토가 시작된다면 바로 그 순간이 왔다는 신호야. 그 무렵에는 보통 잠을 못 자고 먹지도 못해서 쇠약해진 상태일 거야. 그런 상태에서 몸의 경련이 아예 멈추지 않는다면 드디어 갈 준비가 됐다는 뜻이고, 곧 눈앞에 두 세계 사이의 균열이 나타날 걸세. 마치 기념문처럼 생기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균열이지. 균열이 열리면 자넨 그걸 비집고 들어가야 해. 경계를 넘어가면 주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네. 모래폭풍같은 바람이 세차게 소용돌이치거든. 일단 들어가면 어느 방향으로든 걸어가야 하네. 그게 짦은 여행이 될지 긴 여행이 될지는 당사자의 의지력에 달렸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내의 여정은 짧아 우유부단하고 약한 사내의 여정은 길고 위태로운 것이 될 걸세. 이 여정의 끝에서 그는 일종의 고원에 도달할 걸세. 거기서 지형의 일부를 어느 정도 분간하는 것이 가능해질 거야. 평지 위로 솟아 있는 대지야. 바람의 상태로도 알 수 있지. 거기서는 바람이 한층 더 거칠어서 채찍처럼 몰아치고 끊임없이 포효하고 있거든. 그 고원의 정상에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가 있어. 입구에는 두 세계를 가르는 막이 쳐져 있네. 죽은 사람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걸 통과하지만, 우리는 고함을 질러서 그걸 돌파해야 해. 바람, 고원에서 마구 불어대는 것과 똑같은 바람이 한층 더 힘을 얻어서 강해질 걸세. 그 바람이 힘을 충분히 축적했을 때 고함을 질러야 하네. 그럼 바람이 그의 등을 밀어서 막을 통과시켜 줄거야. 그 시점에도 역시 그의 의지는 그 바람과도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고해야 하네. 바람은 그때 그를 살짝 밀쳐주기만 하면 돼. 그 세계의 끝까지 날려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야. 일단 다른 편 세계로 들어간 뒤에는 계속 돌아 다녀야 하네. 운이 좋다면 근처에서, 입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조력자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런 다음엔 그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해야 하네. 가르침을 달라. 나를 디아블레로로 만들어 달라고 직접 간청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만약 조력자가 거기 동의한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당사자를 죽이고, 그가 죽어 있는 동안 가르쳐줄 걸세. 자네가 그런 여행에 나설 때, 운이 따라준다면 조력자로 위대한 디아블레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네. 자네를 죽이고 가르쳐줄 인물을 말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거의 배울 게 없는 힘이 약한 브루호를 만나게 돼. 하지만 자네도, 그들도 그걸 거부할 힘은 없어. 가장 좋은 건 남자 조력자를 만나는 걸세. 행여나 디아블레로하고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 먹잇감이 되어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생을 겪을 테니까 말이야. 여자란 언제나 그런 식이라네. 하지만 모든 건 운에 달렸어. 자네의 은사 자신이 위대한 디아블레로가 아닌 이상은 말이야. 그럴 경우엔 그 은사가 다른 세계에 많은 조력자들을 갖고 있을 거고, 자네가 특정한 조력자를 만나도록 일러줄 수 있지. 내 은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네. 내가 그의 정령 조력자를 만나도록 인도해줬지. 거기서 돌아오고 나면 자넨 예전의 자네가 아냐. 자네의 조력자를 만나기 위해 자주 돌아가게 될 거니까. 그리고 자넨 입구에서 점점 더 먼 곳을 돌아다니게 될 거야. 그러다가 어느 날 돌아올 수도 없을 정도로 멀리 가버리는 거지. 이따금 어떤 디아블레로는 남의 영혼을 하나 사로잡아서 입구에 밀어넣고, 당사자의 모든 의지력이 박탈될 때까지 자기 조력자의 손에 맡겨 놓는 경우가 있다네. 다른 경우, 이를테면 자네 같이 의지력이 강한 경우는 그 영혼을 허리에 찬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해. 그 밖의 방법으로는 가둬놓기가 너무 힘드니까 말이야. 그럴 경우에는 자네가 그랬던 것처럼 싸워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 그런 싸움에서는 디아블레로가 완승을 거두든가, 완패하든가 둘 중 하나야. 이번 경우에는 그녀가 싸음에 졌기 때문에 자네의 영혼을 놓아주어야 했지. 만약 이겼다면 자기 조력자한테 자네 영혼을 가지고 가서 맡겨놓았을 거야.


제2부 구조분석


(1) 식자

(2) 식자에게는 맹우가 있다

(3) 맹우에게는 규칙이 있다

(4) 규칙은 개별적인 합의에 의해 확증된다






##실천적 질서


###첫 번째 구조 단위


<식자>


돈 후앙의 가르침은 “어떻게 하면 식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


1. 식자가 되는 것은 배움의 문제다


1) 식자가 되는 데 필요한 명시적 조건은 없다

2) 암묵적인 필요조건은 몇 가지 있다

3) 누가 배움을 통해 식자가 될 수 있는지는 모종의 비인격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


- 선택받은 자(escogito)

- 힘이 내리는 결정은 징조로 나타난다


2. 식자는 불굴의 의지를 지녀야 한다


1) 절제력

2) 견실한 판단력

3) 불개변성


3. 식자의 마음은 명료해야 한다


마음의 명료함은 방향감각을 제공해주는 명제다. 모든 행위가 이미 정해저 있다는 사실은, 정수받은 지식 내에서 제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이미 결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음의 명료함은 단지 방향감각을 제공해줄 뿐이다.


감각의 구성요소,


1) 길을 찾아 나설 자유

2) 특정한 목적에 관한 지식

3) 유연성 등을 통해 선택된 진로의 타당성


4. 식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1) 극적인 행동력

2) 효율적인 수행 능력

3) 도전에 맞설 수 있는 능력


5. 식자는 전사다


1) 식자는 경의를 가져야 한다

2) 식자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3) 식자는 완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

4) 의지의 인식

5) 예상되는 변동의 의식

6) 식자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6. 식자가 된다는 것은 끝없는 진행과정이다


1) 식자가 되기 위한 탐구는 거듭 쇄신되어야 한다

2) 존재는 영속적이지 않다

3) 식자는 마음이 깃든 길을 따라가야 한다


네 가지 상징적인 적 - 공포, 명료함, 힘, 노화

탐구를 쇄신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의 획득과 유지를 의미한다. 진정한 식자는 식자가 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네 가지 적과 차례로 싸워 이길 것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탐구를 아무리 성실하게 쇄신해가도, 결국 인간은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직면해야만 한다. 즉, 그는 최후의 상징적 적에게 굴복할 운명에 있는 것이다. 존재는 영속적이지 않다는 관념 말이다.


비영속성이라는 이 부정적 가치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깃든 길을 따라가야 한다. 마음이 깃든 길이란, 사람은 비영속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전진해야 한다는 점을 천명하기 위한 비유적 표현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대안을 선택하여 그것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얻고, 개인적인 성취를 이룰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돈 후앙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힌 것은 마음이 깃든 길을 선택하고 그 여정을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라는 은유로 그의 모든 지식의 존재 이유를 요약해놓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가장 마음에 드는 길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길을 나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하며, 어떤 영구적인 위치에 도달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그의 지식의 한계 밖에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구성단위: 식자에게는 맹우가 있다


돈 후앙은 맹우를 “사람을 그 자신의 경계 너머로 데려가줄 능력을 가진 힘” 이라고 표현

다시 말해 맹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상적 현실 영역을 초월하게 해주는 힘인 것이다.


1) 첫 번째 맹우: 짐슨 위드 JImson weed, 다투라, 악마초

2) 두 번째 맹우: 버섯, 실로시베 속, 우미토, 작은 연기, 스모크


-맹우는 무형이다

-맹우는 어떤 성질로서 지각된다

-맹우는 길들일 수 있다

-맹우에게는 규칙이 있다


1. 맹우는 무형이다

무형이란, 뚜렷한 형상을 지닌 것과는 정반대의 상태를 의미

맹우와 비슷하지만 뚜렷하게 인식되는 형상을 지닌 다른 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만들어낸 구분

맹우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2. 맹우는 어떤 성질로서 지각된다

맹우는 무형이기 때문에 그 존재는 그것이 주술사에게 끼치는 효과를 통해서만 지각될 수 있다.

- 다투라 이녹시아: 여자, 과할 정도의 힘을 부여. 소유욕이 강하고, 격정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유해한 효능. 이 맹우는 추종자들에게 힘을 부여함으로써 의존성을 만들어내고, 육체적 활력과 평안감을 주는 방법으로 그들을 소유한다.

- 실로시베 멕시카나: 남자, 황홀감.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냉정하며, 온화하며, 예측 가능하며, 유익한 효과. 우미토는 추종자들을 엄하지만 공정하게 다룬다. 몸이 사라져버린 듯한 감각을 유발. 몸이 없는 상태에서만 할 수 있는 특수한 종류의 활동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런 특수한 종류의 활동은 불가피하게 황홀경으로 이어짐. 사색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상적.


3. 맹우는 길들일 수 있다

이용 가능성.

1) 맹우는 이동수단이다: 비일상적 현실의 영역으로 데려간다.

2) 맹우는 조력자다: 목표를 달성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나 안내자


###세 번째 구성단위: 맹우에게는 규칙이 있다


맹우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따라야 할 절차를 통괄하는 일련의 행동요강


1. 규칙은 변경될 수 없다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에 포함된 행동만을 허용한다.


2. 규칙은 누적되지 않는다

맹우를 조작하기 위해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다 동원되었다는 가정에 근거


3. 규칙은 일상적 현실에서 확증된다

맹우가 들어 있는 힘을 가진 식물을 식별하고 수집하고 혼합하여 조제하고, 보살펴 키우는 절차와, 그 식물을 사용하는 상세한 절차 및 그 박의 세부사항들로 이루어져 있다.


4. 규칙은 비일상적 현실에서 확증된다

맹우와의 만남, 해당 규칙의 특정한 목적

_비일상적 현실 상태_: 규칙에 따라 사용하면 특이한 지각 상태를 만들어낸다. 학습이 상당히 진전된 단계에 이르면 굳이 식물을 쓰지 않아도 맹우와 만나는 것이 가능함을 내비쳤다. 말하자면 의지력만으로도 맹우를 만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1) 비일상적 현실은 이용 가능하다

실제로 쓸모가 있음을 암시. 맹우를 만나는 목적은 그들의 비밀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설명했고, 이런 명분은 비일상적 현실 상태를 추구하는 자가 품을 수 있는 사적인 동기를 차단하는 엄격한 기준으로 기능했다.

2) 복수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다

- 안전성: 늘 일정하다. 언제든 멈춰 서서 어떤 구성요소든지 마음대로 살펴볼 수 있으며, 살펴보는 시간도 딱히 제한이 없어 보임

- 단일성: 낱낱이 떨어져 있는 모든 세부를 하나로 합쳐서 전체상 내지는 온전한 합일체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강박적인 욕구 내지는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

- 일반적 합의의 결여: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구성요소들을 지각.

_규칙의 특정한 목적_: 맹우를 이용하여 실리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


###네 번째 구성단위: 규칙은 개별적인 합의에 의해 확증된다


- 은사


(1) 규칙의 확증을 위해 필요한 개별적인 합의의 배경을 준비한다:

비일상적 현실의 다른 상태들

- 이것들은 메스칼리토에 의해 만들어진다.

- 메스칼리토는 용기에 들어 있다.

- 용기는 힘 그 자체다.

- 메스칼리토에게는 규칙이 없다

- 메스칼리토는 도제 교습이 필요 없다.

- 메스칼리토는 수호자다.

- 메스칼리토는 스승이다.

- 메스칼리토는 뚜렷한 형체를 가진다.


_로포포라 윌리엄시, 페요테_ 1) 메스칼리토라고 불리는 존재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여겨졌고, 2) 이용 가능했으며, 3)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식물 안에 그냥 들어 있는 것에 불과한 맹우와는 달리, 메스칼리토와 그것이 들어 있는 식물은 동일했다. 즉 이 식물은 공공연한 존경의 대상이었고, 마음 깊은 숭배를 받는 존재였다. 돈 후앙은 특정 상황, 이를테면 메스칼리토에게 완전히 묵종하고 있을 경우, 단지 이 선인장에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비일상적 현실 상태가 유발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메스칼리토에게는 규칙이 없으며,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인간을 일상적 현실의 경계 밖으로 데려가줄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맹우로는 간주되지 않는다.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메스칼리토를 맹우로서 이용하는 것을 막았을 뿐 아니라 (왜냐하면 규칙없이는 그것을 조작할 방법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맹우와는 현저하게 다른 힘으로 만들었다.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의 직접적인 결과는 누구든 메스칼리토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맹우의 경우처럼 오랜 도제수업을 받거나 조작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전혀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메스칼리토는 수호자라고 불린다. 수호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그것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호자로서의 메스칼리토가 모든 사람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아니었고, 어떤 사람들은 메스칼리토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돈 후앙에 따르면 그런 불친화성은 메스칼리토의 ‘단호한 도덕성’과 이용자의 의심쩍은 성격 사이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메스칼리토는 스승이기도 해서 교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스칼리토는 사람들을 올바른 행동으로 이끄는 지도자여서, 올바른 길을 가르친다. 돈 후앙이 말하는 올바른 길이란 도덕적인 정당성이 아닌 행동의 적절성에 더 가까워 보이며, 그의 가르침이 강조하는 효율성의 맥락에서 행동 패턴을 단순화하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돈 후앙은 메스칼리토가 행동을 단순화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믿고 있었다.


메스칼리토는 실체를 가진 하나의 존재로 간주된다. 고로 그것은 대개 일정하거나 예측 가능하지는 않지만 뚜렷한 형체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성질은 메스칼리토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만 아니라, 같은 사람이라 해도 보는 시기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돈 후앙은 메스칼리토는 어떤 형체든지 자유롭게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로 이 특징을 설명했다. 그러나 메스칼리토는 자신과 궁합이 맞고 몇 년 이상 꾸준하게 섭취를 계속한 사람 앞에서는 결코 변하지 않는 일정한 형체를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스칼리토에 의해 일어난 비일상적 현실은 이용 가능하며, 이 점에서는 맹우에 의해 일어난 것과 동일하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돈 후앙이 그것을 이르킬 때 동원하는 가르침의 명목이었다. 돈 후앙은 내가 ‘올바른 길에 관한 메스칼리토의 교훈’을 찾아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메스칼리토에 의해 일어나는 비일상적 현실 또한 구성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도 메스칼리토에 의해 유발된 비일상적 현실 상태와 맹우에 의해 유발된 상태는 동격이었다. 두 경우 모두 해당 구성요소들은 안전성, 단일성, 일반적인 합의의 결여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개별적인 합의를 유도한다


##개념적 질서


- 제자

돈 후앙의 가르침에서 나온 낱낱의 개념이 모두 내포된 의미 매트릭스.

개별적 합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개념적 질서의 두 구성단위를 받아들이는 일을 수반한다.

(1) 개별적 합의에 의한 현실이라는 개념

(2) 일상적이며 일반적인 합의에 의한 현실과 개별적 합의에 의한 현실은 똑같이 실용적인 가치를 가진다는 개념


_나의 도제 수업은 단지 기나긴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 또한 명백해졌다. 당시 내가 겪었던 힘들고 압도적인 경험들은, 돈 후앙이 나날의 삶을 위해 유의미한 추론을 이끌어내던 하나의 논리적 사고체계, 탐구하는 행위가 환희의 경험으로 이어지는 고도로 복잡한 신념체계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했던 것이다_



<카스타네다의 유산>


_무의식 속으로 추락하기 직전, 그는 카스타네다의 돈 후앙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깨달았다. 거미줄 같은, 금빛을 띤 흰 실들로 이루어진 굵은 뭉텅이가, 짜부라진 혈관에서 빛의 섬유처럼 사출되어 진동하면서 살균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올라가는 광경을 보았던 것이다 - 할란 엘리슨, ‘랑게르한스섬 근처에서 표류 중: 북위 38도54분, 서경 77도0분13초_


_”주문을 쓸 때 자네 눈에는 마력의 현시가 어떤 식으로 보이나?”_

_“대개 색깔 있는 끈처럼 보여 - 실, 노끈, 줄.”_

_”흥미롭군”. - 로저 젤라즈니, ‘매드윈드’_


다투라와 페요테 등 북중미 인디언 부족들의 전통적인 환각식물을 샤머니즘 의식을 통해 체계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유발되는 초월적 체험 -하늘을 날고, 까마귀로 변신하며, 동식물과 대화를 나누는- 을 민속방법론의 틀 안에서 다룬 이 특이한 논픽션에 대해 당대의 식자층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무명의 인류학도였던 카스타네다는 일약 신세대의 문화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본서 말미에서 자발적으로 중단했던 도제 관계를 결국 다시 재개한 카스타네다는 제2작인 ‘또 하나의 현실’과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화한 제3작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을 출간.


화제의 중심에 선 카스타네다 본인은 샤머니즘 연구의 범위를 벗어나 일약 오컬트 문학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 제4작 ‘Tales of Power’의 출간을 전후해서 스승인 돈 후앙과의 도제 수업이 완수되었음을 선언하고 저작 활동을 제외하면 그 뒤로는 거의 완전한 은둔자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고전 ‘지각의 문’을 통해 메스칼린(페요테 주 성분) 등을 통한 의식의 변용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됨.


- 가르침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제4작 ‘Tales of Power’는 화자이자 객관적인 관찰자로 머물려고 고투했던 카스타네다가 스승인 돈 후앙의 슬하를 떠나 말 그대로 독립된 식자로서 첫걸음을 내딛는 이야기다. 돈 후앙의 의도적인 조작에 의해 카스타네다의 잠재의식에 삽입되어 있었던 ‘가르침’의 기제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처음에는 파편적인 에피소드의 나열처럼 보였던 초기 3부작의 사건들은 구체적이고 뚜렷한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카스타네다가 겪는 죽음-재생의 경험은 샤머니즘의 비의 전수자의 통과의례를 서투르게 복기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1권부터 찬찬히 축적된 가르침들이 우화를 넘어선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통합되는 대목은 돈 후앙 시리즈의 문학적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3년경 카스타네다는 최종적인 통과의례를 거치며 고대 멕시코 샤먼들의 ‘에너지적 진실’을 체화했고, 자신이 몇천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톨텍Toltec 주술사 집단의 말예였던 돈 후앙의 계보를 잇는 새로운 식자로 다시 태어났음을 선언한다. 결국 그의 이런 결정이 학계와의 결별과 완전한 은둔으로 이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주술과 샤머니즘의 베일을 두르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고대의 비의를 서구 사회에 선보이려고 결심한 구루의 입장에서는 가장 논리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2작인 ‘또 하나의 현실’ 이후 독자 입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환각성 약물의 사용은 목적이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이 서구적 사고방식에 얽매인 서구인임을 강조하는 카스타네다의 강고한 ‘인지’적 장벽을 해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음을 토로한 대목과, 돈 후앙의 가르침은 인디언 샤먼과 제자의 일대일 수업이 아닌 한 사람 이상의 수행자로 이루어진 그룹- 그 구성원이 인디언일 필요는 없다- 의 공동 노력에 의해 완수된다는 부분이다.



구르지예프. 아르메니아 출신의 신비주의자, 철학자, 예술가, 컬트지도자. 다양한 주장을 내포한 유물론적 인식론으로 20세기의 서구 신비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무리 심오해도 일상적 현실의 틀을 벗어나지는 않는 소크라테스적 ‘지혜’보다는 비일상/무의식 속에 은닉된 예지를 중시하는 헤르메스적 전통에 접근했다고나 할까.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서 출간된 SF와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의 환상소설 속에서 카스타네다의 그림자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카스타네드에 대한 직접적 오마주

올터드 스테이트: 매직머쉬룸에 의한 의식의 변용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돈 후앙의 가르침’의 어떤 장면이 고스란히 재현되어 화제를 모았다.

매트릭스, 인셉션, 에메랄드 포레스트


고대 톨텍 주술사들의 가르침과 동서양의 신비주의적 전통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놀랄 정도의 유사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은 독창성의 결여가 아니라 오히려 돈 후앙/카스타네다의 가르침의 진실성을 강화하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의 가르침이 앞서 언급한 구르지예프뿐만 아니라 카발라에서 그노시스주의, 쿤달리니와 탄트라 요가를 망라하는 여러 전통과의 유기적인 병치를 통해 보기 드문 일종의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나의 인지적 ‘틀’로서 기능하는 텍스트 내부에서 주술 수행의 성격상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공간적 ‘균열’들의 존재를 독자가 내면화하고 -돈 후앙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현실에 ‘동의’하고 -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참여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놀라움이나 신기함 또는 익숙함과 같은 찰나적 감흥과는 구별되는 체계적인 경이로움의 영역에 속하며, 21세기에도 카스타네다의 저작들이 단순한 문학적 구조물의 매력을 넘어 꾸준하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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